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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미자, 결혼 반대를 극복하기! 우유 살 돈이 없어서~ 물만 먹였더니! 뇌경색...현재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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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n1989 2021. 10. 8.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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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미자 어린 시절에

사미자가 나이가 굉장히 많은 만큼, 6.25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이기도 합니다.

 

사미자: "6.25 전쟁이 터지면서 피란을 떠나게 되었다. 당시 10살이었다. 우리 가족이 충청도의 어느 마을에 이르러서 어떤 집에서 하룻밤만 묵어 달라고 사정을 했다."

 

사미자: "하지만 그 집 주인은 이미 수많은 피란민들에게 시달려서 문전박해를 당했다. 그런데 그 집에 중학교를 다니던 아들이 마음이 여러, 사랑채에 우리 가족을 몰래 묵게 해주었다."

이런 피난민 생활이 사미자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 같네요.

 

사미자: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셨다. 그래서 어머니께서 우리를 키우셨다. 이화여중 입학 시험에 합격을 했는데, 당시 가정 형편에 서울대에 재학중이었던 오빠의 학비 대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사미자: "그런데 어느날 어머니가 결열한 모습으로 집을 나가셨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몰래 어머니 뒤를 밟았는데, 어머니가 이화여중 교장실로 가시더라."

 

**사미자 어머니의 딸을 위한 헌신

사미자: "그리고 교장 선생님께 90도로 절을 하면서 "딸의 입학 등록금은 가을 추수뒤에 갚겠습니다. 제발 제 딸의 입학을 허락해 주세요."라고 하셨다."

 

사미자: "결국 어머니의 간절한 바램으로 이화여중에 입학하게 되었지만, 어머니가 다른 사람에게 굽실거리는 모습이 미안하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못마땅하기도 했다."

 

사미자: "고등학교도 쌀 3가마니 값을 외상으로 해서 가까스로 입학을 했다.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그 시절에 공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 인생의 성공은) 어머니 노고 덕분이 아닌가 한다."

이후 사미자는 이화여대 영문학과를 1학년 1학기까지 도강을 하기도 하지만, 끝내 학비를 마련하지 못해서 대학교 입학을 하지는 못합니다.

 

그 대신에 미 8군에서 영어 회화를 배워서 통역일 등을 하게 되죠.

** 탤런트 사미자 남편 김관수 첫만남

 

그러다가 사미자는 남편 김관수(이름)을 만나서 결혼하게 되는데, 그 사연이 무척 재미있습니다.

사미자: "이화여고 다니던 시절에, 친구의 부탁으로 성공회 성당에서 하는 연극에 여자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그때 같이 출연했던 남자 주인공이 바로 남편이었다."

 

사미자: "당시 연극연습을 하면서 남편에 대하여 호감을 느꼈지만, 공연을 마친 다음에는 별다른 기약도 없이 서로 헤어지게 되었다."

 

사미자: "그러다가 3년의 세월이 흐른 다음에, 어느날 길거리에서 (운명처럼)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이후 사미자와 김관수는 연인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사미자 남편 직업- 탤런트 출신 사업가. 원래 KBS 탤런트 1기생으로 드라마에 출연하다가 사미자와 결혼한지 10년만인 1972년에 탤런트 생활을 은퇴하고 사업가의 길을 걷게 됨. 사미자 김관수가 우리나라 제 1호 탤런트 부부로 불리고 있음)

 

나이는 사미자보다 2살이 많았죠.

 

**사미자 결혼 반대를 극복하기 위하여

 

사미자 김관수는 1962년에 결혼식을 올리게 되는데, 당시 사미자 집안에서는 이 둘의 결혼을 반대합니다.

 

바로 김관수가 별다른 재산도 없는 가난한 탤런트였기 때문이었죠.

사미자: "당시 남편은 배우 활동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사람이 좋은 것도 좋지만, 나를 좀 더 넉넉한 환경에 시집보내고 싶어 하셧다. 결국 남편과의 결혼이 무산될 것 같아서 폭탄선언을 했다. "나 사실 아기 가졌어"라고 거짓말을 하자, 어머니는 며칠 밤을 눈물과 한숨으로 지새우셨다."

 

사미자: "실제 임신은 얼마 뒤였는데, 그 때를 생각하면 나는 어머니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불효자식이었다."

결국 사미자는 23살의 나이로 결혼하고, 얼마 뒤 임신해서 아이를 낳게 됩니다.

 

둘은 총 2남 1녀를 두게 되었죠.

 

***사미자 유부녀임을 숨기고

 

그리고 사미자는 1963년 동아방송 성우 1기로 데뷔하게 됩니다.

사미자: "당시 성우로 일하게 되었을 때(신혼 초기에), 마포구 판자촌에서 사글세로 살았어요. 그리고 9년 뒤에 90만원에 13평짜리 국민주택을 구입했을 때는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더군요."

 

사미자: "그런데 성우 모집시 채용조건이 '고교 졸업에 미혼자여야 한다'였어요. 그래서 결혼과 딸이 있다는 사실을 속이고 입사했죠."

사미자: "당시 큰딸이 6개월이었는데, 아이가 하루종일 울어서 어머니가 동아방송 스튜디오로 딸을 데리고 왔어요. 우유 살 돈이 없어서 물만 먹였더니, 배가 고파서 울었던 모양이에요."

 

사미자: "그래서 어머니에게 "나 여기서 잘릴텐데, 왜 아이를 데리고 왔냐?"라고 난리를 쳤지만, 방법이 없었어요. 결국 어머니와 딸아이를 데리고 화장실로 피해서 우는 아이에게 젖을 먹였어요. 그런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젖이 도무지 나오지 않는거에요."

사미자: "그때 나를 찾으라는 말을 들은 전원주가 화장실로 들어와서는 젖을 먹이고 있는 제 모습을 봤어요. 전원주도 내가 처녀인 줄 알고 있었는데, 딸에게 모유 수유하는 것을 보고는 말 한마디 못 할 정도로 크게 놀랐죠."

사미자: "결국 전원주에게 절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전원주가 입이 보통 싼가요. 금새 동기들이며 PD의 귀에까지 이 소식이 전해졌죠."

.....

사미자는 지난 2005년에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후에 2018년에 뇌경색으로 또 다시 쓰러지면서 생명의 위협을 느껴 대중들의 염려가 상당했는데요. 이후에 이렇게 방송에 출연하면서 근황을 알려 반가움을 사고 있습니다. 이번 방송을 통해 사미자는 뇌경색 이후에 재활을 거쳐 건강을 되찾은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라고 합니다. 

작년 뇌경색으로 쓰러졌던 사미자는 눈을 뜨니 오후였는데 남편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면서, 시술로 다행히 위험한 상황은 모면했으나 후유증이 있을 것이라고 하더라며 당시의 아찔했던 기억을 전했습니다. 그런 사미자를 다시 일으켜세운 것은 바로 연극의 힘이었다고 하는데요. 사미자는 연극을 통해 희망적인 생각을 했고 새 생명을 찾았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출연으로 사미자 남편 김관수 자녀 등에 대한 관심이 상당한데요. 

사미자 고향은 경기도 파주시로, 10살때 6.25 전쟁을 겪었으며 아버지를 비롯해 사랑하는 사람들이 먼저 떠나서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사미자는 1963년에 성우로 데뷔한 이후에 배우로 전향했으며, 중견 탤런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배우로서 뿐 아니라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사미자 젊은시절 사진을 보면 상당한 미인이었음을 알 수 있는데요. 초반에는 유부녀임을 숨기고 연예계 생활을 시작했지만 얼마 되지 않아 밝혀졌다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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