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영화배우 문희 남편 장강재..간암으, 인생사를 밝힌 "조용한 은퇴 풀 스토리"~집 공개..

STAR

by fan1989 2022. 8. 25. 12:32

본문

반응형

60년대에 한국의 대표적인 미녀여배우로서 큰 인기를 모았던 영화배우 문희는 남편 장강재 한국일보사장과 사별한 후 43년 만에 처음으로 대중 앞에 그 모습을 보여주었답니다.



대표적인 미인여배우로 60년대를 풍미했던 문희는 결혼 후 한번도 대중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칩거해왔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문희에 대해 몹시 궁금해왔던 것이 사실이지요.



문희는 65년에 ‘흑맥’이라는 영화로 데뷔했는데 빼어난 미모와 뛰어난 연기력으로 인해 단번에 인기여배우로 급부상하였지요.

 

60년대에 보기드문 절세의 미모를 간직하고 있는 문희를 보기위해 문희가 출연한 영화의 상영관에는 수많은 관람객들이 줄지어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을 보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 었지요.



그만큼 문희는 당시 김지미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미인으로서 명성이 높았으며 많은 사람들이 트로이카 중에서 문희가 가장 예뻤다고 얘기합니다.

 

문희: "1960년대는 우리나라 영화의 전성기였기 때문에 짧은 기간에 엄청나게 많은 영화를 찍어야 했어요. 그런데 그 많은 영화를 나랑 여배우 세 사람(트로이카 세명)이 돌아가면서 찍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게다가 당시에는 배우가 직접 의상과 메이크업 등도 해야 했어요."

 

- 여배우 문희가 춘향전, 누가 그 여인을 모르시나요 등 18편에 겹치기 출연하다가 8일 김곡에서 춘향전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귀가하던 중 쇼크를 일으켰다.



- 문희의 졸도는 겹치기 출연으로 인한 과로로 발생한 것으로, 이번이 세번째 졸도이다. 문희 양은 현재 자택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이 당시 문희는 6년 동안 총 300여편의 영화들에 출연했다고 하며 인기 절정이었던 71년에 장강재 한국일보사장과 결혼함으로써 연예계를 은퇴하였지요.



문희: "1965년 18살 때 이만희 감독에 의해 처음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다음에 하루에도 수십 개의 일정을 소화하느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무척 지쳐 있었어요. 그리고 영화 작업에 대한 애착을 갖지 못해, 결국 24살때인 1971년 결혼과 함께 떠났어요.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영화에 대한 미련없이 주부로서의 삶에 충실할 수 있었어요."

당시 연예계 1호로 재벌가와 결혼했다고 국내에서 큰 주목을 받았죠.



장강재는 1945년생으로, 문희보다 2살 연상이었고, 언론인 및 정치인으로 활동했던 장기영의 아들입니다.

 

실제로 장기영은 한국일보 사주 겸 국회의원, IOC위원 등을 역임하기도 합니다.



문희: "당시 출연 예정이었던 영화의 제작을 남편(장강재)이 맡으면서 결혼에 골인하게 됐다. 데뷔 이듬해(1966년)에 남편이 영화 '연인의 길' 제작에 참여했다."



문희: "그때 내가 촬영 현장에 갈 때 남편이 직접 운전을 해 데리러 왔었다. 처음에는 누군지 관심도 없었는데, 후에야 장강재 회장이라는 걸 알게 됐다."

 

아마 장강재 역시 문희에게 첫눈에 반했던 것 같습니다.

 

문희는 장강재 회장과 1971년 결혼을 하게 됩니다. 



문희: "남편이 1993년 간암으로 세상을 떴다. 너무 빨리 혼자가 됐다. 혹시나 나의 내조가 부족해서 남편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하는 죄책감도 들었었다."



문희: "(남편 사망 당시에) 아이들도 다 외국에 있어서 나혼자만 있었다. 그래서 정말 힘들었다. (남편 사망 이후에) 2년간 집 밖에 나오지 않고 칩거생활을 할 정도로 충격이 컸다. 지금도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늘 남편이 그립다."

 

문희는 그동안 전업주부로만 살았기 때문에, 사회 생활 적응에도 애를 먹게 됩니다.



문희: "남편이 떠난 후 내가 그동안 얼마나 바보처럼 살았는지를 알게 됐어요. 집안에서 살림만 해서 아무것도 몰랐죠. 그래서 애들한테도 미안했고요."

 

문희: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엄마가 똑똑하지 못해서 너희들에게 도움이 못 된다"는 말도 했는데, 사실 어쩌겠어요.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요.



문희: "그리고 제가 언론에 잘 나서지 않았던 이유는 제가 말을 잘하는 사람도 아니고 카메라 울렁증이 심해서 그동안 인터뷰를 하지 않았어요. 또한 우리 아이들이 굉장히 보수적인 편이서, 내가 방송에 나가는 것을 싫어하는 면도 있었고요."



문희: "사실 지금까지는 애들이 하라는 대로 했는데, 이제부터는 내 인생은 내가 살려고 해요."

 

실제로 문희는 혼자 정악을 배워서 4년만에 공연을 하기도 하는데, 자기 인생을 살게 됩니다.



아무리 나이가 있어도, 배움이 있는 삶, 스스로 개척하는 삶이 정말로 아름답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네요.

 



* 문희 집 공개, 과거와 현대의 조화

 

이날 공개된 문희의 집은 화이트톤으로 깔끔하고 럭셔리하게 꾸며져 있었으며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커다란 통유리창은 조명이 필요없을 만큼 환하게 거실을 비추고 있었지요.



넓고 쾌적한 거실 환경과 고급스러우면서도 깔끔하게 처리된 인테리어 공간은 문희의 정돈된 성격을 잘 대변해주는 것 같았지요.



놀라운 것은 문희 저택의 거실이나 방에 구질구질한 장식이나 소품들이 전혀 없으며 깔끔하면서도 심플한 인테리어가 다소 의외라고 느껴질 만큼 단조로움의 미가 눈에 띄었답니다.

 

한국일보 회장의 부인으로써 살아왔던 귀부인 문희의 저택은 생각보다는 화려하지 않았고 치장이나 장식도 없다는 점이 보기 좋게 느껴졌답니다.



* 문희는 아들 2명과 딸 1명을 낳게 되죠.

 

문희 딸 장서정(이름)은 어머니의 미모를 그대로 빼닮았기에, 한때 MBC 탤런트 시험에 응시하기도 합니다.

친구들의 권유에 시험삼아 응시했던 MBC 탤런트 시험에서 장서희는 1차 서류심사와 2차 개인연기 및 카메라 테스트를 모두 합격하게 됩니다. 그러자 부담감을 느낀 장서정이 3차 시험(면접과 연기 테스트)은 응시하지 않아서 탈락하게 되었죠.



이후 결혼을 하고 조용히 살고 있는데, 어머니의 뒤를 이어서 탤런트 생활을 하는 것도 나쁜 선택이 아닌지 않았을까 하네요.

 

문희 아들중에 둘째인 장서호는 2008년에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문희 큰아들인 장중호 사장(일간스포츠 대표 이사)의 결혼이 한때 큰 주목을 받게 됩니다. 바로 결혼 상대자가 탤런트 명세빈이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명세빈 장중호는 실제로 결혼을 올리지 않고 파혼하게 됩니다(명세빈 장중호 파혼).

 

이후 장중호는 2009년에 백모씨와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명세빈과는 파혼했기 때문에, 이 결혼식이 초혼이 됨)

문희 며느리 백모씨는 원래 쥬얼리 업계에서 활동하고 있었으며, 미국 등 외국에서 오랫동안 유학을 한 경험이 있는 등, 명세빈보다 장중호 대표(미국 아메리칸 대학교에서 유학 경험)와 공통점이 많았습니다.



문희: "결혼 문제는 우리 아들(큰아들 장중호)이 알아서 해야 할 문제인데, 도통 결혼을 빨리 안 하려고 한다. 사실 (아들 외에도) 요즘 젊은 사람들은 결혼을 빨리 하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문희가 큰아들의 결혼이 늦게 되자 걱정하면서 하는 말이었습니다.

 

문희: "나는 조건 같은 것을 보는 게 싫어해서 (아이들 혼사에) 나서서 중매를 한다거나 같은  일은 못 하겠다. 본인들만 사랑한다면 다른 조건은 필요 없다. 며느리를 맞는다면 편안하게 해주는 시어머니가 되도록 할 것이다."

 

문희는 이렇게 다짐을 하곤 했습니다.

 

사실 문희와 장강재 역시 열렬한 연애 결혼을 했고, 조건을 보지 않고 결혼에 골인한 케이스였죠.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