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화 학력 위조가 시작된 시점
윤석화: "‘石花’는 호고, 본래 이름은 ‘錫和’예요. 중학교 다닐 때 동양화를 배우면서 낙관을 만들 때 아버지께서 ‘너는 바위에도 난을 잘 치니까 호를 石花로 하렴’ 하시면서 호를 지어 주셨죠."
윤석화: "그리고 배우가 된 다음에는 그걸 예명으로 쓰고 있어요."
먼저 윤석화 학력 위조 논란입니다.
원래 윤석화는 이대 나온 여자로 많이 알려졌습니다.
방송에서도 언급했고, 이화여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선배로서 하는 강연도 종종 했기 때문이죠.
윤석화: "어릴 적 CM송을 부르던 시절에 했던 철없던 거짓말이 30년 세월동안 양심의 발목을 잡았어요. 용기 없어 주저하는 사이에 결국 지금까지 이르게 됐음을 (대중과 팬들은) 용서해 주기 바라요."
참고로 2007년 당시에는 신정아부터 시작해서 영어강사 이지영, 건축디자이너 이창하, 영화감독 심형래, 동숭아트센터 대표 김옥랑까지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여러 언론사들이 사회 명사들의 학력을 점검했고, 당시 MBC에서는 윤석화를 취재하고 있었습니다.
윤석화: "(MBC의 취재에 쫓겨서 먼저 고백했다는 시각에 대하여) 아닙니다. 취재에 쫓겨서 고백한 것이 아니에요. 그동안 (거짓말했던 것이) 30년 동안 저를 괴롭게 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윤석화가 이화여대생들처럼 진짜로 이화여대를 다녔다는 사실입니다.
** 윤석화 인맥의 시작
윤석화: "생각해보니 내 인생은 내 뜻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어요. (이화여대) 대학교 1학년때 CM송을 부르기 시작한 것도 (이대) 신입생 환영회에서 임백천씨의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리고 연극을 시작한 것도 녹음실 옆에 극단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윤석화: " 20살이던 1974년 사람들이 내가 실제 이화여대에 재학 중인 학생이라 믿을 정도로 이대에 자주 드나들었어요. 당시 이화여대에 재학 중인 친구를 따라 강의도 듣고, 심지어 신입생 환영회에서 노래까지 불렀죠."
윤석화: "그러다가 음악평론가 이백천 선생님과 알게 되었어요. 당시에는 한 번 만나고 끝날 인연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별 뜻 없이 ‘나 이 학교 학생이다’라고 거짓말을 햇어요."
이처럼 윤석화는 연극을 시작할 무렵에, 이대를 통하여 인맥을 쌓게 됩니다.
참고로 그동안 윤석화는 이대인으로 행세하면서, 채플(기독계열 학교의 예배모임)에 강사로도 참여합니다.
모 이화여대 학생: "채플 시간에 윤석화씨를 소개할 때 모교 졸업생이라고 했고, 윤석화 역시 ‘제가 학교(이대) 다닐 때 채플 시간에는 만날 손톱을 깎았는데 졸업 후에는 가르침과 추억으로 남았다’고 말했어요. 어떻게 학생들을 앞두고 연단에 올라서 그런 큰 거짓말을 할 수 있나요?"
이화여대는 채플 강사를 초대할 때 신분 확인은 한번도 하지 않았던 것 같네요.
아니면 알고도 모른 척을 했거나...
** 윤석화 미국 유학 학력 역시
또한, 윤석화의 뉴욕대 학력 역시 거짓말로 판명됩니다.
윤석화: "제가 NYU(뉴욕대)와 CUNY(뉴욕시립대)의 차이를 모르는 사람은 아닙니다. 뉴욕에서는, 상당히 힘들게 생활했습니다. 그래서 뉴욕시립대는 3곳을 다녔고, 뉴욕대에서는 4과목을 들었어요. 뉴욕대는 사립대이기에 등록금이 굉장히 비쌌어요. 하지만 제가 영주권자였기에, 시립대는 굉장히 쌌죠. 가난한 저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윤석화: "미국에서 20개 강좌를 수강했는데 이수 학점을 채우지 못했으니 당연히 수료가 아니에요. 하지만 그 당시에는 졸업을 못해도 학교에 다니기만 하면‘수료’라는 말을 써도 되는 줄 알았어요."
윤석화를 보면, 학벌을 굉장히 중요시여기는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을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실력이 우선시되는 연극배우에게는 학력이 별 필요가 없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연극배우들에게까지 학력과 학벌 사회를 강요했고,
윤석화 역시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에 편승하여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을 속였네요.
사실 윤석화의 연기에 대한 재능은 학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연극배우로 활동할 때 초창기때부터 '이화여대 출신'이라는 간판덕분에, 언론과 사람들에게 이슈가 많이 되었죠.
거짓 학벌은 윤석화의 재능과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 있지만, 윤석화의 연기 커리어에는 큰 역할을 한 것 같네요.
** 윤석화 남편 김석기 직업
연극배우 윤석화 남편 김석기 나이는 1살 연하입니다. 원래 김석기는 삼성가 사위였습니다.
원래 윤석화는 1992년 '딸에게 보내는 편지'로 큰 인기를 누리다가 미국 유학을 다시 한번 결심하게 됩니다.
이때 미국에서 당시 종합금융회사의 홍콩 지사장인 김석기를 만나게 되죠.
그리고 김석기가 이혼을 한 다음, 1994년 둘은 결혼하게 됩니다. 윤석화는 초혼이었고, 김석기는 재혼이었죠.
윤석화 김석기 사이에 자녀는 없습니다. 다만 윤석화가 입양을 통하여 아들과 딸 1명씩을 얻게 되었죠.
김석기는 윤석화와 결혼 후에 1997년 한누리투자증권 사장으로 부임합니다.
1990년 홍콩에서 킴바코(일신방직 벽산 삼양사 등이 공동 출자한 투자 회사) 사장
1995년에는 미국 살로먼브러더스로부터 한국으로 들여온 1억 달러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김석기가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함
** 윤석화 김석기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그리고 중앙종금 지분을 매입학 최대주주가 된 다음에 1999년 사장 자리에 올랐지만, 불과 10일만에 외국환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구속됩니다.
이때 구속적부심을 통해 풀려난 김석기는 2000년 주가조작 혐의로 검찰 수사선상에 올랐고, 해외로 출국하게 되면서 현재는 기소중지된 상태입니다.
한국에서 김석기는 기소 중지된 상태였기에, 들어오면 바로 체포가 됩니다.
윤석화가 지난 2007년 전후로 안식년을 선언하고 홍콩으로 남편을 만나러 갔을 때도, 남편은 여전히 기소 중지자 신분이었죠.
윤석화: " 남편이 있는 외국에서 두 아이의 엄마로, 그리고 아내로 교회와 집을 오가며 지극히 평범하게 살고 있어요."
윤석화가 안식년으로 배우로 재충전하는 것도 좋지만, 남편에게 빨리 귀국해서 자수하는 것이 더 가족을 위한 행동이 아닐까 하네요.
그리고 지난 2013년 뉴스타파에 의하여 김석기가 조세도피처에 6개의 회사를 세웠고, 해외 도피 중에도 국내에 투자해서 큰 돈을 번 것으로 드러납니다.
뉴스타파: "김석기 전 중앙종금 대표는 자신이 대주주로 있던 RNTS MEDIA N.V.라는 해외법인을 통해 우리나라의 빅스타글로벌 을 972만 유로 에 인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뉴스타파: "RNTS MEDIA N.V.는 지주회사로 법인 사무실은 독일 베를린에 있고, 현재는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있는 상태다. 하지만 조세 리조트(Tax Resort)라고 불리는 네덜란드에 설립된 법인으로 간접세와 직접세를 하나도 내지 않는다."
뉴스타파: "RNTS MEDIA N.V.에는 김석기 씨 부인인 연극배우 윤석화 씨가 2대 주주로 올라 있다.(지분율 10.26%)"
뉴스타파: "김석기는 SYSK(다른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대주주 자격으로 RNTS에 지난 2013년 166만 유로, 2014년에 177만 유로를 빌려준 다음에 이자 수입 24만 유로(연리 7%로)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하여 윤석화 측은 이렇게 해명합니다.
"윤석화 씨가 남편의 사업 실패로 한동안 힘들어했다. 그래서 남편 분의 사업에 도움이 될까 해서 (페이퍼 컴퍼니 이사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 같다. (페이퍼컴퍼니) 설립에 가담한 것은 아니고 이름만 올린 것이다."
**윤석화의 남편 두둔
실제로 윤석화는 남편의 사업이 굉장히 어려웠다고 고백합니다.
"남편의 사업이 실패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남편이 자살하면 어떡할까 걱정하기도 했다."
윤석화: "내 남편은 정직한 사람이고, 우리 부부는 약자다."
윤석화: "나 역시 어려운 여건 속에서 뮤지컬을 제작했다. 하지만 여건이 쉽지 않았고, 너무 힘들어서 20층 건물을 찾아다녔다. 또한 한강을 들이받아볼까란 생각도 했다. 하지만 스스로 자살을 택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윤석화: "그렇게 집에 들어오는 순간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 3시간을 엉엉 울면서 기도하면서 '하나님, 제가 CF를 하면 됩니다'라고 기도했다. 그러자 진짜로 CF가 들어왔다."
이처럼 윤석화가 고백하는 것 들과 세간에 알려진 것은 무척 다릅니다. 혹시 윤석화 남편이 아내마저도 속인 것은 아닐까요?
참고로 윤석화가 홍콩에서 살았던 집은 리펄스베이의 대저택이었죠.
윤석화는 거기서 살면서 과연 남편의 사업이 어렵다고 정말로 믿은 것은 아니었겠죠.
아무튼 윤석화 남편이 기소 중지로 외국을 떠돌면서 '윤석화 이혼' 루머가 퍼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윤석화 이름이 페이퍼컴퍼니에 등록되었고, 지분 역시 적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김석기나 윤석화 양쪽 모두 이혼을 하기에는 쉽지 않은 것 같네요.
** 윤석화 근황
현재 윤석화는 자신의 주무대인 연극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부터 마스터 클래스를 공연했고, 7월부터 8월까지 햄릿 공연이 예정되어 있죠.
여러가지 도덕성의 시비가 있긴 하지만, 윤석화는 성공한 배우입니다.
도덕성때문에 성공을 위한 그녀의 노력까지 폄하할 수는 없죠.
그런 윤석화의 정신을 잘 드러낸 말이 아래와 같습니다.
"아등바등 살 이유는 없지만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 꼭 해야 하는 이유는 없지만 굳이 하지 않아야 할 이유도 없다."
성공을 향한 윤석화의 노력은 대단하지만, 그 방향성에 대해서는 한번쯤 생각할 필요가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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