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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언 이상해 위암, 아내 김영임과 어떻게 결혼..공포영화보다도 더 무서운 충격 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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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n1989 2022. 8. 21.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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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스탠딩 코미디의 창시자, 1세대 코미디언 이상해와 국악계 최고의 스타 명창 김영임 부부. 

 

스물여덟 국악스타 김영임과 그녀보다 8살이나 많은 노총각 코미디언 이상해의 결혼은 당시 많은 화제를 낳았습니다.

 

 

1964년 스무 살이 되던 해 유랑극단쇼 무대로 데뷔한 이상해는 1968년부터 이상한&이상해 콤비로 TV에서 처음으로 '스탠딩 코미디'를 선보이며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후 '스타쇼' '희한한 세상'등에서 MC를 맡기도 했으며 1993년 한국방송 연기대상과 1994년 한국방송 방송대상을 받았습니다.

 

이상해는 '고등학교 중퇴' 학력도 솔직하게 고백했는데요. 

 

1960년 4월, 4·19 혁명 당시 선배들의 말에 휩쓸려 거리로 나섰던 그는 다시 학생의 신분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많은 시간이 흐른 뒤 그의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그는 부모의 학력에 '고등학교 중퇴'라고 솔직하게 기재했다고 합니다.

 

1975년 이상해는 대마초 흡연으로 입건되어 연예인협회에서 무기한 출연금지 조치를 받았다가 4년 만인 1979년 출연 정지가 해제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습니다.

 

평소 하루에 몇 번씩 문안인사를 할 정도로 아흔살이 넘은 노모를 살뜰히 챙기는 소문난 효자로 소문이 자자했던 이상해는 어머니 가슴에 대못을 박는 불효를 저지르게 된 것이 후회스럽다고 합니다.

 

1979년 이상해는 부인 김영임과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이상해 부인 김영임은 열아홉 나이에 ‘회심곡’으로 국악인 최초 밀리언셀러 앨범을 보유한 명창, 유명한 국악인으로 두 사람의 나이는 11살 차이가 납니다.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습니다.

 

이상해 김영임 두 사람의 첫 만남은, 

 

 

노래를 잘하는 젊은여자가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상해는 김영임 공연을 관람하러 가게 되었는데,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김영임을 보고 이상해는 첫 눈에 반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2년동안 김영임에게 애정공세를 하였지만 잘되지 않았고 작전을 짜게 되었습니다.

 

택시를 대절하여서 김영임을 태웠고 강제로 납치를 하게 된 것 입니다. 다행히 위험한 일은 생기지 않았고 두 사람은 그 후에 수상스키를 즐기면서 만남을 이어갔습니다. 지나서 생각해보니 이상해는 천벌 받을 짓이었고 무식했다고 반성을 했습니다.



※ 이상해 김영임 부부의 만남과 결혼에 관해, 두사람이 예능 프로에 출연해서 한 발언이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요.

 

'김승우의 승승장구'에 이상해가 아내 김영임과 함께 나와 한 토크가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당시 이상해가 아내 김영임과 어떻게 결혼을 했느냐는 질문에,

 

결혼 전, 이상해는 김영임에게 2년 동안 꾸준히 대쉬를 했으나 김영임은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김영임을 자기 여자로 만들기 위해서 이상해가 선택한 방법은 '납치'였습니다. 영업용 택시 한 대를 대절해서 그녀가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기다리고 있다가 단숨에 낚아채어 택시 안으로 던져 넣었답니다. 차 안에 거꾸로 처박혀진 김영임은, 당시 인신매매가 성행하던 시절이라 공포에 질려서 "살려달라"고 미친듯이 외쳤답니다. 하지만 택시는 아랑곳 없이 계획대로 인천 송도의 호텔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살려 외치는 김영임의 소리가 멈추지 않자 아무래도 찜찜했던지 택시가 중간에 한 번 멈춰섰습니다. 당시 서울에서 송도까지의 택시요금은 대략 1만 5천원 정도였지만, 다급해진 이상해는 무조건 "10만원!"을 외쳤고, 멈췄던 택시는 곧바로 다시 출발했습니다. (택시기사는 명백한 납치 공범이다...) 다짜고짜 사람 많은 호텔 로비로 끌려들어간 김영임은 수치심을 느꼈습니다. 국악인으로 활동하며 얼마간의 인지도를 쌓고 있던 시절이라, 누군가 알아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급히 제발로 호텔방 안까지 걸어들어갔답니다. 인생 최대의 실수였죠. 차라리 그 자리에서 망신 한 번 당하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것을.

 

납치라는 범죄까지 자행한 남자와 호텔방 안에서 이성적 대화가 통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엄청난 착각이었습니다. 제발 그냥 집에 보내 달라고, 자기에게 나쁜 짓을 하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는 순간, 그녀의 얼굴에 주먹이 날아왔습니다. "퍽~" 김영임이 거기까지 말하자 이상해가 우물쭈물 가로막으며, 일부러 작정하고 친 게 아니라 홧김에 손을 휘두르다 보니 잘못 맞은 것이라고 변명을 합니다. 납치당하고 뺨을 얻어맞고 성폭행까지 당한 이후, 김영임은 좋아하지도 않았던 9살 연상의 이상해와 결혼을 했습니다. (당최 이해할 수 없는..;;)

 

하지만 그녀를 얻기 위해 그토록 혈안이 되었던 남자는 결혼하자마자 태도가 180도 바뀌었습니다. 신혼 첫날밤에 노름을 하느라 밤새 신부를 혼자 내버려 두었고, 결혼생활 중에도 걸핏하면 와이셔츠에 낯선 여인의 립스틱을 묻혀 들어왔습니다. 약간의 구속도 견디지 못하고 자기 맘대로 살려고만 하는 이상해 때문에 부부싸움은 그칠 날이 없었고, 남편은 다툴 때마다 분을 이기지 못해 이것 저것을 마구 집어던졌습니다. 그러다가 한 번은 사람 많은 길바닥 한복판으로 아내를 집어 던진 적도 있었습니다.

 

 

이상해는 몸을 푼지 얼마 안 되는 아내와 갓난아기가 뒷좌석에 타고 있는데도 운전을 하면서 태연히 담배를 피웠습니다. 담배연기 때문에 목이 아프다고 아내가 하소연하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한겨울인데도 창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매서운 칼바람과 담배연기 속에서 산모는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 포대기를 덮어씌우며 울먹였고, 남편은 아랑곳 없이 그 상태로 한 시간을 달렸습니다. 남편의 이러한 학대 속에서 김영임은 우울증과 불면증, 거식증에 시달리며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이것은 명실상부한 '범죄 토크'입니다. 여자를 납치하고,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고, 성폭행을 하고... 저는 방송을 보는 내내 심장이 쿵쿵 뛰었고, 공중파 TV의 토크쇼에서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결혼했으면 되는 건가요? 아니죠, 아무리 결혼했어도 범죄는 엄연한 범죄입니다. 범죄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강력 범죄입니다. 게다가 이상해의 폭력은 결혼 후에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부부싸움 하다가 아내를 길바닥으로 집어 던졌을 정도면, 일일이 언급은 안했지만 주먹을 휘두르는 일은 다반사가 아니었을까 싶군요. 하긴 뭐 결혼 전에도 주먹으로 얼굴을 때렸던 남자인데, 결혼 후에야 오죽했겠습니까?

 

그 모든 일을 참고 살아온 김영임의 선택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하지 않겠습니다. 어쨌든 그들 부부의 일이며, 이혼하지 않고 견디어 왔기에 현재가 행복하다고 여긴다면 (과연 행복할까?) 그녀 나름대로는 성공한 삶이겠죠. 

 

제발 그런 일은 없기를 바라지만, 머리 나쁘고 무모한 사람이 이상해의 성공담(?)을 듣고 똑같이 따라하면 어쩔 셈입니까? 납치하고 때려서라도 몸을 빼앗기만 하면 그 여자와 결혼할 수 있을 줄 알고 말입니다. 물론 대다수의 평범하고 선량한 남자들은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겠지만, 이 세상에는 별 이상한 사람도 많으니까요. 또 그런 일까지는 벌어지지 않는다 해도, 이상해의 범죄 토크는 그 자체가 정신을 오염시키는 바이러스였습니다. 듣는 내내 불쾌하고 치가 떨리고 소름이 끼쳤습니다. 조금도 재미있거나 유쾌하거나 유익하지 않았습니다.



2011년, 위의 약 절반을 절제하는 위암 수술을 받은 남편 이상해. 아내 최영임은 위암 후유증으로 한번에 많은 양의 음식을 멋지 못하는 이상해를 위해 하루에 식사 8끼를 챙겨 남편을 먹일 만큼 24시간을 남편의 간호에만 매달렸다고 합니다. 여전히 하나부터 열까지 너무나 달라 싸울 일도 많지만 서로가 너무 각별하다는 부부.



김영임의 45년 국악인생에도 고비는 여러 번 찾아왔습니다. 

 

무리한 일정 탓에 갑작스레 찾아온 안면마비. 소리를 업으로 삼고 살아온 그녀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8개월이란 시간은 고통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찾아온 우울증과 자궁적출수술까지... 

 

그녀가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바로 ‘가족’이었습니다. 

 

예쁘게 자라 이제 엄마가 된 큰 딸과 남편과 싸울 때면 엄마 편을 들어줄 줄 아는 속 깊은 아들은 그녀의 버팀목. 

 

하지만 누가 뭐래도 그녀에게 의지가 되는 건 남편 이상해 였습니다. 

 

20년 가까이 공연을 할 수 있었던 건 공연기획 전반에 힘써주는 남편이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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