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빚보증과 생계형으로 가수생활 / 혜은이의 어머니는 연기자였으며 아버지는 인기 연예인의 산실인 '낙랑쇼'의 단장 겸 유명한 변사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인해 혜은이는 10대 중반부터 가정환경이 어려워졌다고 하는데요.
당시 혜은이의 아버지는 후배 보증을 섰다가 잘못되는 바람에 집에서 맨몸으로 쫓겨났다고 합니다.
혜은이의 어렸을 적 꿈은 발레리나였다고 하는데요. 훈련이 너무 힘들고 건강이 따라주지 않아 도중에 그만두고 집안이 어려워진 그녀는 여고를 졸업하고 생계를 위해 가족이 살던 대전에서 서울로 상경해 밤무대 무명가수로 활동을 시작해 가장 역할로 인한 생계형 가수로 살았다고 합니다.
서로 안면이 있던 혜은이와 김동현은 1988년 교회에서 만나게 되면서 친분이 두터워졌고, 인천 소재의 야간업소에 함께 출연하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집니다.
결국 혜은이는 이혼 1년후인 1989년 김동현과 결혼을 약속하는데, 김동현 집안에서의 반대가 만만찮았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1990년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죠.
혜은이와 김동현 사이에는 아들 김민석(이름)이 태어납니다.
그리고 얼마되지 않아서 혜은이와 김동현은 큰 고난을 겪게 되죠.
먼저 김동현이 영화제작을 시작했다가 크게 실패하게 됩니다.
김동현이 연기는 오래했지만, 제작자로서의 경험은 전무한 상태에서 일을 너무 크게 벌였던 것이죠. 두편의 영화를 동시에 제작했고, 그 중 한편은 일본에서 올로케로 촬영하게 됩니다.
혜은이: "아이가 두살이 됐을 때 남편이 영화제작을 시작했어요. 일본에서 모든 촬영을 했으니 제작비가 두배로 들어갔죠. 영화제작이 남편 생각대로 잘되지 않았어요. 영화가 개봉하기도 전에 부도가 난 거죠. 그때 사업하느라 쓴 현금만 30억원 정도 될 거예요. 당시에 그 정도 현금을 썼으니 남는 건 하나도 없었죠. 가지고 있던 땅이랑 임야도 모두 사라져버렸어요."
또한 업친데 덮친 겪으로, 혜은이 역시 빚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재산을 날리고 빚더미에 앉게 됩니다.
혜은이: "당시 제가 받을 빚도 20억원이 넘게 있었는데 그건 한 푼도 못 받고 갚아야 할 돈은 다 갚았죠. 연예인 신분이라 빚을 받을 때는 마음대로 안되더군요. 10년 동안 정말 고생 많이 했어요."
혜은이: "그 기간 동안 중간에 방송에 나와 근황을 밝히면 바로 빚독촉 전화가 왔어요. 또 일 때문에 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데, 기름이 바닥이 난 거예요. 수중에 돈은 없고 그래서 생각한 것이 아들 돼지저금통이었죠. 집에 사람들이 올 때마다 아이에게 준 돈을 돼지저금통에 모아뒀거든요. 그 돈을 꺼내서 기름을 넣기도 하고, 생활용품을 사기도 하고 그랬어요. 다시 채워놓으면 되겠지 생각했거든요."
혜은이: "그런데 어느 날 돈이 필요해서 돼지저금통을 보니까 그렇게 많던 돈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얘한테 너무 미안하고, 제 처지도 슬프고. 그날 펑펑 울었어요. 그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아파요."
결국 두 부부는 노래를 부르고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빚을 갚기 시작합니다.
생소한 사업이 아니라, 두 사람이 그동안 잘해왔던 걸로 돈을 번 것이죠.
그러다가 혜은이는 커다란 물혹 때문에 자궁 적출 수술을 받게 됩니다.
혜은이: "민석이를 낳을 때 의사가 ‘자궁에서 작은 혹이 하나 발견되었다. 물혹은 저절로 없어지는 경우도 많으니 상태를 지켜보다 커지면 그때 수술을 하자’고 했어요.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남편의 영화제작 실패로 빚을 지게 돼 10년 동안 정신없이 뛰느라 까맣게 잊고 있었죠."
혜은이: "혹이 3kg이 넘을 정도였어요. 의사가 둘째 아이(실질적으로는 셋째 아이)를 낳지 않을 바에야 안전하게 자궁 전체를 제거하는 게 낫다고 권유해서, 그대로 따랐죠."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는데, 이전에 혜은이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사건과 겹치면서, 혜은이는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받습니다.
혜은이: "아버지는 제가 인기 절정일 때 돌아가셨지만, 어머니는 제가 고생하는 모습을 다 보시고 돌아가셨어요. 살아계실 때 해외여행 한번 시켜드리지 못한 게 천추의 한으로 남아요."
기름값이 없어서 아들 돼지저금통을 뜯어야 했을 정도니, 혜은이가 친정 어머니에 대해서는 평생 한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수술 후유증과 더불어 이것이 갱년기 우을증으로 발전했죠.
혜은이: "많은 주부가 갱년기를 전후해 우울증에 시달리는데, 저도 많이 힘들었어요. 운전을 하고 가다가 갑자기 차를 박아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밤에 자다가 벌떡 일어나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날이 많았죠. 자꾸만 무너져가는 저 자신이 너무 낯설고 무서웠어요."
혜은이: "우울한 기분이 찾아든다 싶으면 일부러 사람들이 많은 버스터미널이나 극장 매표소, 재래시장을 찾아다니면서 기분전환을 했어요. 무엇보다도 남편과 아이 덕분에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었죠. 온갖 짜증을 다 부렸는데도 남편은 묵묵히 저를 감싸줬고, 옆에서 제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가장 많이 지켜본 아들도 제가 친정어머니 얘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면 ‘엄마 이리와’ 하고는 저를 안아줬어요. 우울증을 겪으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꼈어요."
역시 가족이란 존재는 소중한 것 같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가족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보듬어 줄 수 있으니까요.
혜은이: "지금까지 살면서 힘든 일이 많았지만 그렇게 힘들었던 것은 처음이었어요. 갱년기 우울증이 남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겪어보니까 진짜 힘들더군요. 왜 사람들이 우울증으로 자살하는지 알겠더라고요. 그 정도로 힘들었는데, 우울증 치료를 위해서 병원에 가보지는 못했어요. 연예인이라 우울증 치료를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어떤 이상한 소문이 날지 몰랐기 때문이죠."
사실 한국 사회에는 혜은이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역시 정신 병원에 가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입니다. 소문이 나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럴 경우 치료의 시기를 놓쳐서 더 큰 병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울증 같은 스트레스성 정신병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이 사라져서, 많은 사람들이 제때에 병원을 이용했으면 하네요.
혜은이는 첫번째 결혼은 실패했지만, 두번째 결혼은 성공한 것 같습니다.
그녀의 마음 자세가 남달랐기 때문이죠.
혜은이: "제 경험에 비춰보면 부부간의 믿음과 사랑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서로가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는 거예요. 내가 남편이라면, 아내라면 하고 한 번만 생각한다면 싸울 일이 없거든요. 그동안 제가 남편에게 부렸던 온갖 짜증과 불만을 남편도 똑같은 방법으로 저한테 되돌려줬다면 아마 저희 부부에게도 큰 위기가 찾아왔을 거예요. 다행히 남편이 고비마다 현명하게 대처해줬고 저 역시 그런 남편을 보면서 한 걸음 물러서는 법을 배울 수 있었죠."
25년 이상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던 혜은이의 연륜이 돋보이는 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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