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때문에 결혼 했다’! 두 번째 남편과 이혼..세 번째 남편과 간음하여 때문에.
이상아는남자의 재력을 보고 결혼을 했는데, 오히려 그들의 빚까지 떠맡게 되었으니! 세 번의 결혼과 이혼.
1984년 14살의 어린 나이로 데뷔를 한 이상아씨! 뚜렿한 이목구비와 또랑또랑한 눈동자. 그리고 해맑은 미소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었는데요!
이상아는 어린시절부터 예쁜 외모로 주목을 받았으나 20대때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어머니와는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아픈 기억들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예쁜 외모 덕분에 연예계에서는 배우 김혜수와 함께 3대 미녀로 거론되면서 승승장구 하는듯 했으나 26살의 나이에 전성기는 끝나고 말았다.
배우 이상아와 개그맨 김한석의 결혼은 정말 당시 충격과 또 충격이었습니다. 김한석은 1992년 MBC 특채로 입사한 개그맨으로, 이휘재와 롱다리와 숏다리 콤비로 개그 활동을 했지만, 이휘재가 승승장구 인기를 얻어간 반면 김한석은 데뷔 이후 수 년간 개그맨으로서 별 다른 임팩트를 주지는 못했습니다.
아무튼 당시 김한석은 비교적 막 알려지기 시작한 개그맨이었던데에 반해서 이상아는 한때 청순 여배우의 대명사, 80년대 최고의 하이틴 스타 중의 한명이었기에, 당시 굉장한 이슈가 되었습니다. 모두들 김한석이 운이 좋았다, 라는 분위기였죠.
그런데 불과 1년만인 1998년 이상아와 김한석은 이혼을 하게 되고, 대중들은 결혼 소식이 충격적이었던 만큼, 이혼 소식 역시 굉장한 실망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죠.
당시 김한석과 이상아의 이혼사유로는 대체로 아래와 같은 3가지 루머가 떠돌았습니다.
첫번째는 김한석의 바람끼때문에 이혼을 했다,
두번째는 이상아의 사치때문에 이혼을 했다,
세번째는 이상아 친정을 지원하는 경제적인 문제로 이혼을 했다 등
아무튼 당시 이상아는 청순 여배우의 대명사였던 만큼, 김한석에 대한 사람들의 비난은 무척 컸습니다.
당시 대중들은 김한석이 바람때문에 '청순'의 아이콘 이상아와 이혼을 했다고 여기고, 김한석에게 비난을 가한 것이죠. 김한석이 눈물을 많이 흘렸다.
이후 김한석은 이혼 후 3년이 지난 2000년에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찾은 첫사랑과 재혼을 하게 되고, 이상아 역시 2000년 4월에 재혼을 하게 됩니다.
이상아의 두 번째 결혼 상대는 연예 엔터테인먼트 사업가인 전철 씨입니다. 2000년 4월의 일입니다.
전철은 이상아와 결혼 당시 영화사 시네마네트를 운영하고 있는 연예사업가로, 1990년 부산 동아대를 졸업한 후 1993년 탤런트로 연예계에 입문해서 연기자로 활동하다, 1994년에는 장동건과 듀엣음반을 내기도 했던 연기자 출신 사업가입니다.
친구 사이이기도 했던 장동건의 부탁으로 장동건의 매니저로 활동하는 등 연예사업가로 일해오다, 영화 '수병위인풍첩'을 제작하기도 했는데요.
이상아는 두 번째 남편 전철과는 1990년대 초부터 연예계에서 함께 활동하면서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고 하는데요. 이상아가 첫 번째 남편 김한석과 이혼하고 이대입구에서 의류점을 하고 있는 이상아를 CF 섭외차 찾아와서 인연이 재개되었고, 만난지 4개월만에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리고 됩니다.
이상아는 자신의 결혼 소식을 가장 먼저 절친이었던 배우 옥소리에게 알리며 축하를 받았다고 하며, 전철은 친구 장동건에게 가장 먼저 알렸다고 합니다.
당시 이상아는 혼전임신을 하기도 했는데, 위에서 고백한 것처럼 돈을 보고 한 결혼이었다는 점에서 원래부터 불행을 예고한 재혼이었습니다.
이상아와 전철은 결혼 후 딸 다빈을 낳고 잘사는 것처럼 보였는데, 근데 결혼 1년 4개월만인 2001년 8월부터 별거에 들어가 같은 해 12월 이혼을 하게 됩니다. 이혼 당시 이상아는 남편 전철이 사업 때문에 진 빚으로 자신의 출연료까지 모두 차압을 당하며 친정에까지 손을 빌릴 정도로 경제상황이 악화되었다고 고백을 한 바 있습니다.
다만,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두 사람 빚의 대부분이 이상아 앞으로 되어 있어서, 이혼 후에도 이상아가 빚을 많이 갚아야 하게 되었죠.
이상아: "딸 아이 아빠 (전철)와 헤어졌을 때는 절망의 낭떠러지까지 갔었어요. 우윳값도 없었을 정도였으니까요."
이 당시 이상아의 이혼사유를 놓고 두 사람은 격렬하게 논쟁을 벌이기도 했죠.
이상아: "(이혼사유는) 남편의 빚때문이다."
전철: "아니다. (이혼사유는) 이상아의 바람기때문이다."
이상아: "전철의 주장은 말도 안된다. 대학원 다닐 때 알던 교수와 한 차례 식사를 했을 뿐이고, 후배라는 남자는 남편의 후배이기도 해서 평소에도 셋이서 자주 만났었다."
전철: "하루는 너무 이상해서 휴대폰을 이용해서 위치추적을 했다. 그런데 (이상아가) 말한 것과 다른 장소였다."
전철: "게다가 밤 12시가 넘도록 그 남자와 호텔에서 함께 있었다. 나중에 알아봤더니 (상대남은) 홀아비였다. 게다가 더 황당한 것은 장모 (이상아 어머니)가 ‘처음 아니냐? 넌 거짓말 안 하냐?’라고 말해서 너무 서러웠다."
이상아: "아니다. 이혼사유는 경제적인 문제였다. 내 출연료까지 차압된 상태였다. 결혼 후 친정에서 5,000~6,000 만원 가량을 손을 벌려야 했다. (남편이) 결혼하기 전 ‘영화제작을 한다’, ‘매니지먼트를 한다’고 말했지만 모두 거짓말이었다."
전철: "난 몇 백 억 부자라고 한 적도 없고 내 빚도 있긴 하지만 이상아의 빚도 있다. 결국엔 이상아가 ‘돈 때문에 결혼 했다’는 말까지 했다. 결국 그것이 결정적인 이혼 사유가 됐다."
이처럼 두 사람의 주장은 서로 팽팽히 맞섰지만, 두 사람의 딸을 위하여 법적인 조치는 취하지 않습니다.
또한, 위에서 전철이 의심했던 불륜 상대가 바로 윤기영, 이상아의 세번째 남편이 됩니다. 처음부터 두 사람의 친분이 남달랐던 것 같네요.
배우 이상아의 세 번째 결혼이 알려진 것은 2009년의 일입니다. 다만 이번 경우는 결혼식이 알려진 것이 아니라 무려 6년 전에 혼인 신고를 하고 세 번째 결혼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공개가 되며 화제가 되었습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배우 이상아는 두 번째 남편 전철과 헤어지고 1년 가량이 지난 시점인 2002년 12월 경에 경기대학교 대학원 통일안보외교학과 동기생으로 만나 친분을 쌓아온 11살 연상의 윤기영 씨와 혼인 신고를 했다고 합니다.
이상아가 전철과 두 번째 이혼을 하는 과정에 검찰청과 법원을 드나드며 복잡한 상황에서 윤기영 씨가 이런 저런 일을 친오빠처럼 도와주기도 했고, 두 번째 남편 전철과의 이혼 이후 의식주조차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윤기영 씨가 살 집을 마련해주길래 고마워서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바 있습니다.
이상아: "결국 두 번의 실패 후에야 비로서 제가 진정으로 원했던 남자는 아빠같은 남편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거죠."
이상아: "(남편과의 나이차이가) 11년이기 때문에, 오히려 정신적으로 의지가 많이 되고 편안해요."
이상아는 세 번째 결혼은 순탄하게 잘 지내는 것 같았습니다. 결혼 이후 드라마에도 출연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가던 것으로 보였으나, 그러난 세 번째 결혼 역시 윤기영 씨가 사업이 실패하며 경제적 파탄이 나고 이상아 어머니한테까지 빚을 얻으며 갈라서게 됩니다. 별거 2년, 최종 합의 이혼까지 3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이처럼 이상아의 두번째 결혼과 세번째 결혼은 경제적인 문제로 성급하게 결혼했다고 고백을 했고, 이혼으로 이어지게 되었죠.
참고로 세번째 이혼 후의 이상아의 지출은 얼마나 될까요?
이상아: "내가 남자 빚 갚아주는 팔자인건지, 지금도 빚에 시달리고 있다. 매 달 생활비와 채무 관련된 돈이 고정적으로 800만 원 정도 나간다."
이상아: "월 고정 지출이 800만 원이다. 지난달에 돈을 꿔서 (과거 빚의 원금과 이자로) 600만 원을 냈다. 네 (이상아 딸 윤서진)가 가지고 싶은 걸, 다 못 사준다."
다달이 드는 생활비와 빚의 원금, 이자가 엄청난 금액이네요.
두번째나 세번째 결혼에서 이상아는 남자의 재력을 보고 결혼을 했는데, 오히려 그들의 빚까지 떠맡게 되었으니, 이상아의 팔자가 기구하다고 할 수 있죠.
이상아: "세 번째 이혼 즈음부터 공황장애가 왔었다. 갑자기 숨을 못 쉬겠고 쓰러질 것 같고 땀이 막 쏟아졌다."
이상아: "드라마 쫑파티 자리에 갔는데 갑자기 토할 거 같더라. 헛구역질 증상과 함께 화장실에서 쓰러졌다."
이상아: "처음 결혼했을 때부터 마지막 결혼까지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 오히려 정리하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시대를 대표하는 미인'으로 태어났던 이상아가 어릴 때 좀 더 '교육'을 제대로 받았고, 가치관과 판단력이 제대로 정립이 되었다면, 과거의 실수들을 저지르지 않았을테고, 현재는 좀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네요.
배우 이상아는 지난 2004년 누드화보를 찍은 경험도 있습니다. 당시에 여배우들의 누드 화보는 꽤 인기가 있어서 손쉽게 수억원의 돈을 만질 수 있기에 선택한 것이었는데 지금은 후회를 한다고 합니다.
또한 지난 2009년에는 파산선고를 받을 지경이 돼서 지인에게 3,500만원의 빚을 졌다가 고소를 당하기도 하는 등 톱스타에서 추락한 인기, 세 번의 결혼과 세 번의 이혼에 누드화보, 파산까지 너무도 어렵고 힘든 시기를 통과해 왔습니다.
이상아가 스물 다섯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어야 했던 이유는 한량이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와 두 자매를 부양해야 했던 소녀 가장이었다는 아픈 과거사, 그리고 세 번의 이혼으로 인한 상처로 한 때 공황장애를 앓기도 했다는데요.
이상아가 '시대의 미인'으로 태어났고, 한때 하이틴 스타로 엄청난 인기와 큰 돈을 벌었지만, 너무 어릴 때부터 연예인 생활을 하는 바람에 '판단력이 성숙하지 못했고', 주체적인 삶을 살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세번의 잘못된 결혼들로 나락으로 떨어졌고, 현재는 다행히 어느 정도 재기에 성공해서 드라마의 조연 배우로 활동하고 있죠.
만약 이상아가 좀 더 현명했더라면, '충분한 판단력을 위한 교육'을 받았더라면, 본인의 미모를 바탕으로 훨씬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