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김종환, 음반을 1,000만 장을 판 국내 가수? 부모 허락 없이 동거! 딸 과의 관계를 숨긴 이유는?

fan1989 2021. 7. 8. 10:38
반응형

가수 김종환과 아내 김금숙 씨의 러브스토리도 아주 유명합니다. 

김종환의 평생 동반자인 아내(부인)은 김종환이 음악다방에서 DJ를 할 때에 손님으로 처음 만났습니다. 

 

김종환과 그의 아내는 첫눈에 서로 반했고, 둘은 이불 한 채와 냄비 하나로 살림을 시작했지요. 예전에는 음악다방 DJ가 큰 인기를 끌었는데, 김종환 역시 음악다방 DJ를 먼저 시작하며 가수의 꿈을 키웠지요.

당연하죠. 가진 것이라고는 젊음과 통기타 뿐인 가수 지망생에게 딸을 내 줄 부모가 어디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비록 보증금 30만원에 월세 3만원짜리 단칸방에서 시작한 신혼생활이었어도 두 사람의 사랑은 깊었고, 겨울에 냉골에서 지내고 노래를 하면서도 신발장사, 야채장사, 포장마차 등 안 해 본 장사가 없었을 만큼 고생도 심했지만, 두 사람은 드디어 2000년 4월 동거 15년만에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그러나 김종환과 김종환 부인에게 큰 어려움이 닥쳤습니다. 김종환이 어렵게 마련한 집이 빚보증으로 날아가버리게 되었고,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지내야했지요.

 김종환은 가족과 함께 살아갈 날을 그리며 노래에 전념했는데요. 김종환은 아내에게 세살 부럽지 않은 로맨티시스트 남편이자 김종환 딸들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수로서도 성공 이전이었고, 수입은 일정치 않았고 아내마저 몸이 좋지 않아 두 딸을 강원도 동해의 외가에 맡기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김종환은 - "무명 시절부터 꾸준히 모은 돈으로 조그마한 집을 샀다. 융자 받아서 집을 샀는데 그 집이 경매로 넘어가 버렸다. 넘어갈 때 1집이 나왔다. 판이 나올 때 집도 동시에 경매로 넘어가 버린 것이다"

 

당시 김종환 1집을 낸 음반회사마저 부도가 나버립니다.

 

아이를 처가에 맡기는 상황이 상황이 반복되자 결국 김종환의 아내 김금숙씨는 아예 친정집 근처의 빈 농가에 아이들과 지낼 거처를 마련했고, 김종환은 일하는 업소 근처에서 하숙을 했다고 합니다. 

김종환 - "(힘든 일은) 하루 아침에 같이 오더라. 네 식구가 함께 살 수 없었다. 난 서울에 남아 하숙하면서 돈을 벌고 가족들은 홍천으로 떠나 보냈다. 생이별을 했다"며 "3년간 매일 서울과 홍천을 오갔다"고 회상했습니다.

 

1집 앨범이 잘 안 되고 집이 경매로 넘어간 힘겨웠던 시기 김종환 아내와 딸들은 그와 떨어져 시골에서 살았습니다. 그 당시 아내와의 통화 내용을 그대로 가사로 담은 '존재의 이유'를 만듭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탄생한 '존재의 이유'는 김종환의 노력에 의해 성공한 곡입니다.

 

김종환은 동대문 패션타운 DJ들을 쫓아 다니며 CD를 건넸고 '느려서 안 된다. 손님들이 싫어한다. 틀 수 없다'는 DJ들의 거절에도 한달 내내 찾아 다니며 부탁에 부탁을 거듭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김종환의 노래가 패션타운에 울려 퍼지자 마자 궁금증과 동시에 인기가 치솟았고, 복제 음반이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기 시작한 것.

김종환 - "방송국에서 전화가 와서 '음반을 달라'고 하는데 줄 수 없었다. 노래가 먼저 알려져서 판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주말마다 안방 극장에서는 그의 노래가 울려 퍼졌는데요. '존재의 이유'는 시청률 65%가 넘었던 드라마 '첫사랑' 남자 주인공 테마곡으로 쓰이면서 더 많은 인기를 얻게 됩니다.

 

김종환의 또 다른 대표곡 '사랑을 위하여'는 양평 물안개 공원에서 가족을 생각하며 썼다고 하는데요. 가족에 대한 간절함을 담은 '사랑을 위하여'는 300만장이 넘게 팔린 히트곡이 됐습니다. 

덕분에 양평 물안개공원에는 김종환의 기념비가 세워졌고,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국민 애창곡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김종환은 1998년 젝스키스, H.O.T. 같은 최정상 아이돌 그룹을 제치고 골든디스크 대상을 수상합니다.

 

당시 김종환은 미사리나 양평 등에서 노래를 하며 새벽에 일을 마치고 하숙집으로 돌아가기 전 공중전화로 아내와 긴 통화를 하곤 했는데, "언젠가는 너와 함께 하겠지. 

김종환은 자식이 잘되는 모습을 끝내 보지 못하시고 고생만 많이 하다가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보여드릴 수 없어 아팠던 마음을 고백...

 

김종환이 유명세를 타면서 음반이 불티나게 팔리고, 방송국에서도 끊임없이 러브콜이 오자, 당시 김종환 소속사에서는 김종환에게 아내와 두 아이가 있다는 걸 숨기라고 했다는데요. 기혼 사실을 알린 가수 중에 잘 된 케이스가 한명도 없었다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김종환은 소속사의 만류에도 불구, 현재의 자신을 있게끔한 아내와 가족을 위해 늦은 결혼식을 올립니다. 이렇게해서 김종환의 아내와 두 딸에 대해 알려졌지만, 소속사의 우려와는 달리. 기존보다 1.5배이상 누나팬들이 더 늘어났다고 하네요.

 

.....

김종환 딸 김담은 2012년 리아킴이라는 이름으로 김종환 딸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데뷔했습니다.

리아킴 나이, 1987년 7월 생으로 올해 나이 33세.

 

리아킴은 2012년 '위대한 약속'이라는 앨범으로 데뷔했습니다.

 

김종환이 작사, 작곡한 곡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소중함을 알고, 그 사랑을 영원히 지켜나가고 싶다는 소망을 담은 편지 같은 가사가 인상적인 곡.

당시 김종환이 가수 리아킴 데뷔당시 딸이라는 사실을 숨겨야만 했던 이유에 대하여,

 

김종환은 - "(딸) 리아킴과의 관계를 숨긴 이유는 리아킴이 실력으로 인정받았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며 "내가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리면 이 아이(리아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리아킴은 아기 때부터 팝, 클래식, 샹송, 포크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자연스레 접했고, 초등학교 5학년부터는 잭슨5의 ‘벤’, 캔사스의 ‘더스트 인 더 윈드’ 등을 능숙하게 불러대는 것은 물론, 자신만의 스타일로 다양하게 바꿔 불렀다고 합니다.

 

중학생때부터 가수의 꿈을 키워온 리아킴은 팝송대회에서 3년 연속으로 대상을 수상하는 등 뛰어난 가수 재능을 발휘했다는데요.

가요 매니저들사이에서 김종환의 어린 딸 소문이 나자, 

 

몇몇 기획사들이 걸그룹 연습생으로 들어오라고 집요하게 접근해오기도 했다고 합니다.

 

당시 11살 소녀였던 리아킴은 걸그룹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김종환의 생각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노래, 할머니가 되어도 부를 노래를 하길 바랐고, 

리아킴도 고심 끝에 “오랜 세월 생명력을 지니는 가수가 되겠다”는 선택을 했습니다.

 

리아킴 - "그냥 아버지와 하고 싶었다. 가장 중요한 건 내 단점을 잘 아신다. 그걸 바로잡아줄 프로듀서는 아버지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부터 리아킴은 데뷔하기까지 12년 동안 혹독한 가수 훈련을 자청했다고 합니다.

 

김종환은 금쪽같은 어린 딸이지만 세상 힘든 것 알게 하기위해 새벽 신문배달을 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서울 대학로와 인사동 한복판, 백화점, 시장, 지하철, 버스정류장, 식당 등 아무리 시끄럽고 주위 산만한 장소에서도 아랑곳 않고 담담하게 노래하기 등 ‘멘탈 코칭’을 시켰다고 하네요.

 

김종환 - "자식을 왜 고생시키고 싶겠나. 아버지 이름에 얹혀 가는 게 싫었다"고 냉정하게 훈련시킨 속내를 전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김종환이 ‘존재의 이유’로 주목받기 전 가정의 경제적 환경은 최악이었는데요. 

당시 리아킴은 본의 아니게 강원도 산골 외가에서 지냈는데, 오히려 이 기간 어르신들 심부름하며 배려하는 마음을 알게 되었고, 시골길에서 노래 부르며 자연의 감성이 녹아들었다고 합니다.

 

김종환과 리아킴은 함께 공연을 다녔습니다. 

 

'사람이 좋다'에서 KBS 김정택 음악단장은 "좋은 곡은 언제 들어도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구나 싶다.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되는 노래를 해준다"며 김종환 음악의 힘을 평했고, 김종환은 자신의 노래에 희망을 얻는 사람들이 있기에 대가 없는 무대에도 섰습니다. 김종환은 무대에서 "평생 노래하고 여러분과 살아가는 가수가 될 거다"고 약속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