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홍:"모녀의 숨겨진 이야기가"! 첫 모자 동반 인터뷰예요. 모두가 놓쳤던 진실은? 박수홍 실은 어떤 사람인가요?
첫 모자 동반 인터뷰예요. 지인숙 이런 경험도 하네요. 내가 뭘 더 바라겠어요.
이렇게 다 해봤는데 말이에요. 수홍이는 방송이 끝나고 나면 내 마음이 헛헛할까 봐 걱정하는데 쟤가 나를 몰라요. ‘아! 편안하다’ ‘해볼 거 다 해봤다’ 하고 편안히 살아야죠. 수홍이도 내 나이 돼보면 알 거예요.
방송을 시작한 지 1년 반 정도 되었죠. 일상에서 달라진 면이 있을 것 같아요. 지인숙 저는 건강해진 것 같아요.
그전에는 다른 사람들처럼 나이 먹은 대로 자연스럽게 생활했는데 방송은 아들 위해서 나가는 거잖아요. 이 나이가 되면 입맛이 없어요.
그래도 방송에 나가서 말을 하려면 먹어야죠. 대본도 없이 엠시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아야 하니 정신도 바짝 차려야 하죠.
거울이라도 한 번 더 보게 되고요. 모든 면에서 자세가 똑바르게 되고 정신 차리게 된 것 같아요.
아무리 나이 든 할머니여도 엄마니까, 자식을 위해서라면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 싶어요.
아들의 직업을 더 이해하는 계기도 됐겠어요. 지인숙 전엔 잘 몰랐어요. 연예인들은 화려하잖아요.
잘 먹고, 잘 다니겠다 생각했죠. 그런데 직접 해보니까 불편한 게 너무 많더라고요. 우리는 한 번 가서 2주치를 찍어요.
지금은 아침 일찍 나가서 밤 9시 정도면 집에 들어오는데 처음에는 자정이 넘어 1시가 되고 그랬어요. 녹화하는 동안 김밥을 먹거나 잘 먹으면 도시락인데, 젊은 사람들이 이거 먹고 몇 시간씩 하는 걸 보니 안됐더라고.
하다못해 집 앞 슈퍼를 나가도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다 알아보니 아무거나 입을 수도 없고 참 불편한 직업이에요.
우리야 이 나이 됐으니 내일이라도 안 하면 안 하는 거잖아요. 젊은 애들이 힘들겠구나 싶죠.
박수홍 녹화할 때 김밥이라도 놓인 게 불과 몇 년 안 됐어요. 사실 쫄쫄 굶고 녹화하기가 일쑤였죠.
직접 해보시고 얼마나 힘든지 알겠다고 하시니까 이런 면에서는 잘 경험하게 해드렸구나 싶어 감사하고 좋아요.(웃음) 행복한 직업이라고, 누리는 직업이라고 하지만 세상에 만만하고 쉬운 일이 어디 있겠어요.
제때 제대로 밥 먹으며 돈 버는 직업이 없어요. 옛날에 정말 가난했거든요.
어머니도 가게 하실 때 손님이 없는 시간인데도 찬물에 밥 말아서 후루룩 드시곤 하셨어요. 그때는 그게 너무 싫었는데 왜 그러셨는지 이제는 알죠.
악성댓글 대응하겠다는 아들, 말리는 엄마
박수홍 씨는 이번 인터뷰를 하며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앞으로 어머니를 향한 악성댓글에는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것. 지인숙 여사는 옆에서 계속 말렸지만 아들의 뜻은 확고했다.
어머니도 댓글을 다 보신다고요. 박수홍 어머니가 댓글을 안 보셨으면 좋겠어요.
저희 엄마뿐 아니라 다른 어머니들도 댓글을 보세요. 저는 방송 생활을 오래했으니 괜찮아요.
박수홍 엄마,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권리가 있어요. 내가 계속 가만히 있으면 바보 같은 자식 아니에요? 엄마는 평생 싸우지 말라고, 싸우지 않고 지는 게 이기는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오래 살아오신 분의 지혜라는 걸 알지만 이제는 제가 하고 싶은 걸 할 거예요. 그게 내 가족을 지키는 거라면 더더욱요.
연예계 생활을 시작한 지 어언 30년이 되어간다. 이야기 중 그가 “지천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해 새삼 그의 나이를 실감했다. 지천명이란 단어가 주는 무게만큼이나 단단해진 그는 “이제 좀 다르게 살고 싶다”고 했다.
박수홍 씨는 어릴 때 어떤 아이였나요? 지인숙 첫째는 굉장히 야무진 아이였고, 둘째 수홍이는 아주 착하고 순한 애였어요.
박수홍 평생 부모님 말씀을 거역해본 적이 없어요. 하고 싶은 게 있어도 부모님께서 ‘수홍아 그렇게 살면 안 된다.’ ‘하느님이 주신 은혜를 남들을 위해 쓰며 살아야 한다.’ ‘다른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고 하셔서 못 한 게 많아요.
어떤 걸 하고 싶었나요? 박수홍 예를 하나 들자면 정말 사고 싶은 집이 있었어요. 그 집을 사려고 6개월이나 기다렸죠.
그런데 새벽부터 부모님이 찾아오셔서 말리셨어요.(웃음) 너무 좋은 차도 타면 안 되고, 너무 큰 집에 살아도 안 된다.
나중에 그 집에 들어간 분을 만나기도 했는데, 처음엔 부러웠다가 질투도 나고 너무너무 아쉬웠죠. 일주일에 한 번은 그 집 꿈을 꿨어요.
지금도 꿈에 나와요. 프로페셔널이라면, 열심히 했다면 보상을 받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무엇을 하든 다른 사람 신경 쓰느라 제 삶을 살지 못했어요.
어머니는 이런 얘기 처음 들으세요? 지인숙 꿈에 나올 정도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몰랐죠. 박수홍 어릴 때 5평짜리 방에서 다섯 식구가 살았거든요.
돈이 없다고 기죽을 필요는 없다고 가르치셨지만 돈이 없으면 불편하잖아요.
엄마 이런 얘기하면 창피해요? 옛날에 ‘내 통장에 10만원만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하셨잖아요. 정말 가난을 벗어나는 게 꿈이었어요.
지인숙 그렇게 어렵게 살았기 때문에 그 집을 산다니까 말린 거예요. 결혼도 안 했고, 혼자 살며 관리하기에는 너무 큰 집이니까.
엄마 입장에서는 걱정되니 한마디라도 해야 하잖아요. 박수홍 집이 크지 않으니까 이렇게 냉장고가 가깝고 옷걸이가 가깝고 티브이가 가깝다 생각하기도 했지만 무의식에는 후회가 남아있는 거예요.
물론 부모님께서 가르쳐주신 것이 버팀목이 되고, 그것들을 지켜온 덕분에 지금의 삶을 살아온 것이니 감사해요.
하지만 온전한 저의 삶은 아닌 거죠. 부모님과 형제들이 저를 위해 지정해준 방향이었어요.
지인숙 대신 다른 걸 얻었지 않니? 박수홍 물론 그 돈을 다른 데 투자해서 잘됐으니 결과적으로 좋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을 때 그때만 할 수 있는 것, 그 순간들을 놓친 거예요.
집을 예로 들었는데 많은 것이 그랬어요. 내가 행복한 대로 살려면 틀어지고 부러지고 나자빠지더라도 잘못된 선택을 하고 내가 경험하는 게 좋아요, 엄마. 다른 때 말씀 못 드렸으니까 이렇게 인터뷰하면서 미리 말씀드리는 거예요.
놀라지 마시라고요. 이제는 매 순간 제가 원하는 삶을 살 거예요. 나중에 ‘우리 수홍이가 외국에 가서 안 나타나요’ 그러실 수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