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경 가족 가정사! 자궁근종과# 신장 다낭종까지 겹쳐# 임신이 불가능했던!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서울에서 태어난 서주경은 경북으로 내려가 학업을 마치고 1990년에 연예협회주관 각 지방 대표 옴니버스앨범에 진주대표로《내 고향 진주》라는 음반을 내며 본명인 조연희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1991년에 TOP프로덕션에서 전국공개오디션에 참가와 동시에 합격하여 작곡가 김영광의 작품으로 1집 음반을 발표하였고 1993년, 예명 서주경으로 공식 데뷔를 하고 데뷔곡으로 《발병이 난대요》(정은이 작사/ 남국인 작곡)를 발표하였다.
이후 밤무대와 각종 행사장을 뛰면서 빠쁜 나날을 보냈다. 한창 바쁜 시기에 교통사고를 여러번 당해 한동안 잠정 은퇴를 해야만 했다. 그 후 2004년에 가수로 복귀했다.
한국의 트로트 가수.대표곡으로는 '당돌한 여자', '쓰러집니다' 등이 있다.서울에서 태어나서 경북으로 내려가 학업을 마쳤으며, 1990년에 연예협회주관 각 지방 대표 옴니버스앨범에 진주시 대표로《내 고향 진주》라는 음반을 내며 본명인 조연희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서주경의 정장 사진이 멋스러운 초판과, 여러 사정으로 인해 크레딧을 다 빼버린 채 쟈켓마저 교체해버린 재판 앨범이 있다. 여기에서 정은이 작사, 남국인 작곡, 강인원 편곡의 '발병이 난대요'로 여러 가요프로그램에 나가 주목을 받았다. 서주경 본인은 '찬스'가 든 앨범이 아닌 '발병이 난대요'가 든 앨범을 데뷔앨범으로 생각한다고.
1996년에 나온 '당돌한 여자'로 무려 현금 70억 정도를 벌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많은 돈은 없다고 밝혔는데, 아홉 식구를 보살피는 가장 역할을 하면서, 벌었던 돈은 엄마, 돌아가신 아버지, 언니, 동생들, 조카들, 남편과 있었던 일들 등에 돈을 다 썼다고 한다.
당돌한 여자로 한참 잘나가다가 갑자기 은퇴를 했는데, 그 이유가 재벌에게 스폰서 제안을 많이 받아서 넌덜머리 났다는게 은퇴 이유였다고 밝혔으며,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왜 그들이 룸살롱에서 놀 때 노래해야 하나"라고 당시를 털어놨다.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에서 재석팀 슈가맨으로 출연했으며 슈가송은 당돌한 여자. 참고로 슈가맨 역사상 최초로 100불을 달성했다.2019년 3월 6일 채널A 교양프로그램 행복한 아침에 후배 트로트 가수 강문경과 함께 게스트로 출연했다.
2019년 9월 23일에 방영된 복면가왕 111차 경연에서 가창력 갑!티슈로 나와 두루와 두루와 가왕 두루와 두루마리 휴지와 같이 다비치의 8282를 불렀으며, 정체를 밝힐 때 부른 곡은 조수미의 나 가거든이었다.
서주경 결혼 서주경은 2013년 이혼 후 아들과 함께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을 돌보며 가장으로서 생활을 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무대에서는 자유로운 영혼의 날개짓을 하는 중년의 여가수였지만 무대밖 일상에서는 가족을 지키는 가장의 책임 속에서 살고 있었다.
한편 서주경과 전 남편이 이혼한 정확한 사유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서주경 전남편 직업은 대학교수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서주경은 과거 한 방송에서 당시 자신의 남편에 대해 대학생들을 가르쳐서 1월에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고 전한 바 있다.
20년째 노래방 성인가요 차트 상위권 유지! 불렀다 하면 모두가 아는 그 노래! 나이와 남녀를 불문하고 사랑받는 곡이 하나 있다. 바로 가수 서주경의 '당돌한 여자'가 그 주인공이다.
하지만 '당돌한 여자' 발매 이후, 노래 인기에 힘입어 활발한 활동을 하던 그녀는 돌연 가수 은퇴를 선언했다. 그 이유는 그녀에게 부적절한 스폰서 제안이 쏟아졌기 때문.백지수표까지 내미는 거액의 제안도 있었지만, 그녀는 노래 제목처럼 수많은 검은 유혹을 당돌하게 뿌리치며 무대를 떠났다.
"그 당시에 비즈니스 해야 한다는 이유로 술자리에서 노래를 불러야 했어요. 가난한 부모님 밑에서 태어났어도 내 인생, 내 꿈 이루면서 당당하게 살 수 있는데 그런 돈 받으면서 그 사람들의 노리개 감으로 살고 싶지 않았거든요. 저는 그런 가수 생활은 하고 싶지 않았어요."
무대를 떠나 복장 학원에 다니며 의상 디자인 공부하던 그녀.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인생을 바꿀 섭외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전국노래자랑> 참가자들이 애창하는 '당돌한 여자'의 주인공이 궁금하니 방송에 출연 해달라는 것이었다.
무대를 떠난 지 2년여간의 공백이 있었지만, 그녀의 노래를 사랑해준 참가자들을 위해 용기를 낸 그녀! 지난 2002년, 그녀는 무대에 올라 당돌한 여자'를 열창했고, 노래는 다시 입소문을 타고 순위 역주행을 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섭외 전화가 오기 시작하는데, 주체할 수가 없었어요. 당시 대한민국에 1년에 4,400여개 정도의 행사가 있었는데 그 무대에 전부 올랐으니까요. 돈은 말도 못하게 많이 벌었어요. 지금으로 치면 로또 1등에 5, 6번은 당첨된 만큼 벌었으니까요."-
서주경 가족 관계 서주경 자녀 자식 아이 아기 서주경 아들 장선우
10cm가 넘는 자궁근종과 신장 다낭종까지 겹쳐 임신이 불가능했던 그녀. 병원에서는 자궁 파열을 우려하며 임신을 만류했다. 자궁 파열로 인해 자궁을 적출해야 하는 위급 상황이 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목숨을 걸어서라도 아이를 원했던 그녀는 기적적으로 자연 임신에 성공. 지난 2011년, 42세의 늦은 나이에 금쪽같이 귀한 아들 선우를 얻었다.
올해 6살이 된 아들이 엄마 노래에 맞춰 선보이는 재롱을 볼 때면, 스케줄 때문에 쌓인 피로가 한 방에 가신다는 그녀. 최근에는 엄마 향수가 느껴지는 음식을 아들에게 만들어주기 위해 늦둥이 엄마 가수 김정연과 함께 요리 공부에도 도전 중이다.
"우리 아들이 20살이 되면 제 나이가 60대 할머니가 될 거 아니에요. 아이와 함께 할 시간이 20대에 아이를 낳은 엄마들보다 15년은 부족한 거예요. 그 동안에 아들한테 못내 다 해주지 못할 것들이 많을까 봐 그게 너무 미안한 거죠."
서주경 가족 가정사 가족사 서주경 아버지 어머니 집안
서주경의 대표곡이 세상에 알려지기 전,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그녀의 아버지. 희귀병을 앓고 있던 어머니를 대신해 스물다섯의 나이에 그녀는 다섯 식구 가장이 됐다.
십여 차례 이상의 대수술을 받은 어머니의 병원비와 가족들 생활비까지 감당했고, 4년 전 이혼을 하면서 아이까지 홀로 책임지게 됐다.
가족들 앞에서는 힘든 내색 없이 늘 씩씩하게 행동하는 딸이지만, 어머니 눈에는 그런 딸이 한없이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뿐이다. 딸로서, 엄마로서 평생 쉼 없이 가정을 책임지고 있는 서주경의 불꽃 튀는 인생 이야기를 <사람이 좋다>에서 따라가 본다.
"제가 주경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본인 능력으로 정말 열심히 살아요. 어머니한테 효도하면서 자식 된 도리 다하고, 선우한테는 엄마의 모습으로 최선을 다하면서 사는 모습이 너무 예쁘잖아요. 이런 모습이 서주경 그 자체가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딸이 가수 활동하면서 돈도 참 많이 벌었는데 그때 번 돈이 하나도 없어요. 제가 수술도 여러 번하고, 형제들이 힘들면 본인이 나서서 해결한다고 고생하면서 애를 많이 썼거든요. 늘 미안하고 제일 마음 아픈 자식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