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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은 난소암, 불임, 남편 불치병! 아버지가 외도, 양희은은 원망을 가슴속에 품습니다.

fan1989 2022. 8. 25.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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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은 하면 대한민국 포크계보를 잊는 청명한 목소리에 감성이 뭍어있는 가수 입니다. 청소년 시절에 김민기 가수가 바로 양희은 가수에 음악 삶에서 중요한 영향을 만든 인물이라 합니다. 그런인연은 청소년 시절 서울 YMCA가 운영하는 쉼터" 청개구리" 에서 만난 분이 김민기 하고 하니, 어디 인재는 인재를 알아보는 인연이겠죠.





양희은 나이 68세, 서강대학교 사학과 졸업한 후 1971년 당시 '아침이슬'로 가수로 데뷔했죠.

 

이후 '상록수', '한계령',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등 수많은 명곡들을 탄생시킨 대한민국 최고의 국민가수입니다. 



양희은 가족으로는 여동생이 있는데,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배우 양희경이죠.



가수 양희은과 남편 조중문의 결혼 생활은 참 묘합니다. 두 사람의 사랑에는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는 거 같네요. 불꽃같은 사랑부터 은은한 황혼빛 같은 사랑까지...



첫만남에서 불과 3주만에 결혼을 결심했고, 또 묘하게 둘이 한번씩 불치병을 앓게 되지만 서로를 버리지 않았고, 평생을 서로를 위해주고, 의지하면서 같이 늙어갑니다. 두 사람을 보면서,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양희은 1집과 20주년 기념앨범은 각각 67위와 91위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선정되었습니다.



어릴적 양희은은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아버지가 서북청년사건때 진남포에서 단신으로 남하한 양정길이었는데, 육사 4기 포병장교를 거쳐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였고 육군 대령으로 예편이후 병으로 요절합니다. 어머니 윤순모는 서울예대 성악과 출신의 디자이너였습니다.

 



양희은은 3자매중에서 장녀였고, 여동생이 바로 유명 배우 양희경이고 양희경 노래실력 또한 수준급이죠.



그런데 아버지가 외도를 하고 새엄마가 들어오게 되면서 양희은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가슴속에 품습니다. [양희은 아버지 이혼과 재혼]. 



그 후 양희은이 13살 무렵 아버지가 39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뜨고, 가세가 기울게 되죠.



이후 양희은 친어머니가 가장 역할을 하는데, 어린 양희은 역시 맏이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19살때부터 직업 가수의 일을 시작합니다. 양희은이 송창식에게 일자리를 부탁했고, 송창식은 명동의 맥주집에서 자신의 공연시간 중 일부를 떼어주어서 어린 양희은이 돈을 벌 수 있게 해줬다고 합니다.



양희은의 성격은 어릴 적부터 강직했습니다. 선배 가수 조영남이 이런 평가를 할 정도였죠.



대학시절 양희은은 끼니는 물론이고 교통비조차 없어서 걸어다녔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먹고 살기 위해 노래를 해야만했고 공부하면서 돈을 벌어야 했기에, 대학 졸업하기까지 8년이 걸립니다.



그렇게 양희은은 집안의 빚을 갚기 위하여 자신의 이십대를 다 바치는데, 삼십대가 되자 큰 병에 걸립니다.



조영남 - "양희은은 무경우의 천적(天敵)이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어떤 무경우가 발견되면 그녀는 즉시 독립투사형 훈육주임으로 돌변한다. 그리고 싸워서라도 시시비비를 가린다. 그러나 후배들을 다독거릴 때는 천하에 싹싹 상냥무쌍한 큰언니가 된다."



양희은 - "20대에 집안 빚 갚고, 두 동생을 대학 보내고 시집가는 것까지 보느라 내 손으로 월급을 만져본 기억이 없다. 힘들어서 빨리 서른이 되고 싶었는데 병이 찾아왔었다."(1982년)

 

바로 난소암이었습니다.

 

양희은 - "1982년 여름에 첫번째 수술을 했어요. 당시 (자궁) 수술을 집도했던 의사선생님께서는 예상했던 것보다 몇배 긴 시간을 들였어요. 여성호르몬과 목소리는 밀접한 관계에 있기 때문에 수술을 하면서 한쪽 난소만이라도 남겨놓으려고 애를 쓰셨던 거죠."





난소암 말기로 시한부 3개월이라는 판정을 받았던 양희은이지만 동생과 식구들의 정성어린 간호로 병을 치료하는데 성공합니다. 천신만고 끝에 다시 자리를 털고 일어나긴 했으나 병의 후유증으로 이후 불임이 됐습니다.



양희은이 난소암으로 투병중일 때, 1983년에 '하얀목련'을 내고 다시 활동한 적이 있는데 그 이유가 난소암 판정을 받고 투병중일 당시, 청계천에 양희은의 앨범이 날개 돋힌듯 팔리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고 이에 양희은이 수소문해 알아보니 당시 꽤 유명한 음반 도매상이 '양희은 난소암 판정, 전집 판매' 현수막을 걸고 음반을 팔고 있었던 것.

 

이에 화가 난 양희은이 사람이 아픈걸 홍보 수단으로 쓸수있냐고?!이럴수가 있냐?! 고 따졌더니 그 도매상이 '억울하면 신곡 발표 하든가'라고 응수하자 이 곡으로 다시 복귀한것이라고... 원래는 다른 가수에게 갔으나 거절당한 노래에 가사를 다시 붙혀서 발표했다고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난소암을 극복하고 다시 가수로 복귀한 양희은은 우연히 1987년 뉴욕의 한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하다가 조중문을 만나게 됩니다. 두사람이 처음 만날 당시 양희은은 36살, 조중문은 39살이었다고 하네요.





양희은 남편 조중문 직업 사업가, 정확하게는 미국 맨하튼에서 직원 18명이 일하는 대형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사장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첫만남 후에 두 사람은 불과 3주만에 결혼을 하게 됩니다. 이미 첫만남부터 서로의 매력에 깊이 빠져든 둘은 이후 평생을 같이하는 동반자가 되죠. 이렇게 결혼한 이후 양희은은 미국에서 평범한 주부 생활을 합니다. 조중문이 자신이 운영하는 슈퍼마켓에서도 양희은이 절대 일하지 못하게 한 것이죠.

 

조중문 - "결혼하기 전까지 집사람이 쉬어본 적이 거의 없어요. 그래서 저는 결혼과 동시에 집사람이 일에서 좀 풀려났으면 싶었어요. 일을 잊고 집에서 살림만 하기를 바랐던 것인데 오히려 집사람에겐 그게 불만이더라고요."




아내에 대한 조중문의 마음 씀씀이가 느껴지네요.




그렇게 신혼생활을 보내던 양희은은 다시 난소암이 재발하고 맙니다(1989년). 

 

5년전에 한쪽을 남겨두었던 자궁쪽에도 문제가 생긴 것이고, 양희은은 결국 불임이 되고 맙니다.



양희은 - "남편은 (아이를 못 낳는 것에 대해) 쿨하게 '그냥 살면되지' 이렇게 말해줬다. 참 고마웠다."

 

자녀도 없는 미국 생활은 많이 권태로웠고, 양희은의 몸안에는 가수의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결국 조중문은 아내를 위해서 1993년 미국에서의 사업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귀국합니다.



평범한 가정 주부로 지내던 양희은이 다시 가수로 복귀하게 된 것이죠.

 

그렇게 한국에서 행복하게 살던 중, 이번에는 조중문에게 병마가 찾아옵니다.



양희은 - "어느 날 남편이 차 시동이 안 걸린다더라. 손목도 못 움직이는 상태가 시작이었고 류마티스성 관절염이 왔다.



남편의 류마티스는 갈수록 심해졌으나 약도 맞지 않아 부작용에 시달리며 통증이 지독해 잠을 못 잤다."

 

양희은 - "처음으로 내가 일을 그만두고 남편을 간병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대신 아파 줄 수도, 살아줄 수도 없었다. 인간의 한계를 느꼈다."




양희은 - "남편이 통증으로 잠을 설치는 것은 다반사고 아주 짧은 거리를 걸어가는데도 어기적거리고 너무 힘들어했어요. 밥숟가락을 들어올리면서도 진땀을 흘렸고, 승용차에 겨우 앉아 키를 꽂은 다음에도 손목이 아파서 키를 비틀지 못해 시동을 걸 수 없었어요. 혼자서 치약을 짜지 못해 제가 아침마다 칫솔에 치약을 짜놓아야 할 정도였어요."



다행히 관절염의 권위자 재미교포 의사 김문호를 만난 후, 조중문의 류머티즘 증세는 크게 호전이 됩니다. 혼자 걸을 수 있고 혼자 변기에도 앉을 수 있게 된 것이죠.

 

비록 양희은 조중문 부부 사이에 자녀는 없지만, 누구보다도 더 행복한 것 같습니다. 인생의 동반자란 양희은 조중문 부부가 아닐까 하네요.




양희은은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돌이켜보면서 남편에 대한 소원을 하나 갖고 있습니다.



양희은 - "아버지는 39살에 돌아가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린 나이다. 이 남자에게 바라는건 끝까지 함께 가는거다. 나중에 35주년 기념 음반에 '당신만 있어준다면'은 그래서 나온 노래다. 그러다보니 삶의 가치, 결혼, 이 남자의 의미를 돌아보게 됐다."



또한 양희은은 늘그막에 그렇게 원망했던 아버지의 외도를 용서하게 됩니다.



양희은 - "아버지 나이를 넘기고 나서부터는 서른아홉의 남자를 보면 예사로 보이질 않아요. 아버지는 저때 돌아가셨는데 너무나 어린 남자더라고요. 진짜 철없이 딴 여자를 좋아할 수도 있고 곁눈질할 수도 있고, 그런 어린 남자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