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화 상황 위태 롭다! 이덕화가 살아날 수? 오토바이 죽.을뻔했다 간호사 아내 만나 결혼한...탈모와 가발도
이덕화는 사고 후에 더 큰 스타가 됩니다. '맨발의 청춘'이라는 영화로 대스타가 되고 1980년대에 상남자 마초적 이미지, 거칠지만 여자에게는 순정을 바치는 남자 역할로 브라운관을 주름잡죠. 특히 김수현 작가의 '사랑과 진실' '사랑과 야망'으로 절정의 인기를 누리게 됩니다.
현재 나이가 지긋해진 중에도 굉장히 활발하게 연기생활을 하고 있죠. 회장님 역에서 최근에는 소박한 아버지, 희극적인 이미지의 웃긴 연기까지 폭을 넓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왕년에 "멋진 여자~ 멋진 남자~' 쌍방울 트라이 광고는 전설이 되었죠.
저 옛날 '무한도전'이 있기 전에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라는 쇼가 있었는데요. '무한도전'이 '토요일 토요일인 가수다', 토요가 이름을 따온 것도 이 쇼인데 이덕화는 장기 MC를 맡으면서 "부탁해요~"라는 유행여를 탄생시키기도 했어요. 이덕화의 예능감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답니다.
왕년의 마초 이미지에서 참 친근한 이미지가 된 이덕화인데요. 예전에는 탈모가 컴플렉스였는지 사고 때문에 머리가 다 빠져버린 것이라고 방송에서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고가 나기 전, 아주 이른 나이에서부터 탈모는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고 해요.
너무 심해져 가발을 쓰고 다니기 시작했는데 남들 앞에서는 절대 보이지 않다가 가발 사업으로 본인도 돈을 많이 벌고 예능의 결이 좀 달라진 시대가 되어서인지 대놓고 탈모 자학개그를 이제는 펼치실 정도죠. 가발 안 쓰고 모자만 쓰고 운동하다가 헤딩 중에 모자가 날아가 공개된 대머리는 전설의 짤 등극 ㅋ
이덕화와 아내 김보옥의 러브스토리를 보면 감동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이덕화를 있게 한 장본인이 바로 부인 김보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지요.
이덕화 아내 김보옥 나이는 이덕화와 동갑으로 1952년 7월 경기 안성에서 출생하였고 서울에서 성장기를 거쳤습니다.
김보옥 언니는 원로영화배우 겸 시인 김보애입니다. 김보애의 딸 김진아와 아들 김진근 역시 배우로(김보옥에게는 조카들) 배우집안입니다. 김보옥 학력은 서라벌대학교 무용학과 졸업입니다.
1973년에 연극배우로 데뷔하여 '심청전'에서 주인공 심청 역, 이듬해 '춘향전'에서 주인공 성춘향 역, 그다음해인 1975년에 '맹진사 댁 따님 시집가는날'에서 주인공 맹갑분 역을 했습니다. 1975년에 KBS 공채 탤런트로 정식 데뷔하였지만, 1980년 한국무용가로 전향하게 됩니다.
이덕화와 김보옥은 4살때부터 한동네에서 함께 자란 동네친구로 흉허물 없이 지내던 사이였는데, 어린시절부터 김보옥이 참 예뻐서 동네 어르신들이 '이쁜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당시 이덕화도 따라서 '이쁜아~'라고 불렀다는데 아직까지도 아내를 그렇게 부른다고 합니다 ㅎㅎ
아내에게 이런 낯 간지러운 호칭을 나이들어서도 쓴다는 걸 못미더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는 2015년 '아빠를부탁해'에 이덕화가 딸 이지현과 함께 출연했을때, 관찰 예능으로 집안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가 돌아가는 상황에서 실제 '이쁜아~'를 연발하는 이덕화의 모습에 사실인것으로 판정. 근데 이덕화가 '이쁜아~'라고 했을때 아내 김보옥말고도 딸 이지현도 반응하면서. 이덕화 집에 이쁜이는 2명인것으로 판정?!
이처럼 어릴적부터 알고 자란 이덕화와 김보옥은 동네친구로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는데, 김보옥이 이덕화를 짝사랑했던 모양입니다. 이덕화가 종종 "딴데 시집가라"라고 윽박지르기도 했다합니다.
그러다가 1977년 이덕화의 오토바이 사고로 두 사람의 관계는 달라지게 되는데요.
젊은시절 철이 없었던 이덕화는 당시 오토바이 질주를 즐겼다고 하는데요. 친하게 지내던 청춘스타 전영록의 400kg짜리 오토바이를 광속으로 몰고가다 10톤 버스에 깔리는 대형사고가 납니다.
당시 사고로 70m이상 끌려가고 청바지에 벨트만 남고 재킷은 목부분만 남아 있었다 하니 얼마나 큰 사고였는지 짐작이 갑니다. (※ 전영록의 아버지 황해가 위험하다고 절대 오토바이를 몰지 못하게 해서 이덕화가 빌려타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라 합니다.)
그 오토바이 사고로 이덕화는 14일간 의식불명 상태였고, 친구들도 이덕화가 살아날 수 없을거라 생각하고 방송중에 묵념을하고 심지어 조의금까지 걷었었다고...누가보더라도 당시 이덕화의 상태는 생명이 경각에 달려있었고 재기는 불가능해 보였다고 합니다.
이덕화는 당시 오토바이 사고로 인해 지체장애3급 판정을 받아 복지카드까지 발급받았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던 때에 당시 식도 올리지 않았던 여자친구 김보옥은 이덕화를 위해 헌신하기 시작하는데요.
식물인간이나 다름 없던 이덕화가 14일만에 의식을 차린후로도 2년간 반신불수 상태로 꼼짝못하고 병원신세를 져야했던 이덕화의 곁을 끝까지 지키며 병수발을 들었던 것이 여자친구 김보옥이었습니다.
이덕화 - "그때 식도 올리지 않은 아내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정성껏 병수발을 해줬어요. 당시 처형들이 몇번이나 병원을 찾아와서 아내를 끌고나가려고도 했지만 아내는 끝까지 병실에서 새우잠 자가면서 간호해주고 제 곁을 떠나지 않더라구요."
이덕화 - "아내가 2년간 반신불구 상태였던 내 대소변을 다 받아내줬어요. 당시 나는 죽을지 살지도 모르는 상태였고, 살아난다해도 장애자가 될지, 다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태였어요."
이덕화는 꽃다운 나이에 기약없는 병수발이나 하고 있는 아내가 안타까워보여서 나 만나지 말고 다른사람 만나 시집가라고 윽박질렀는데도, 끝까지 자기 곁을 지켜준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항상 간직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 이덕화는, 이후 아내 김보옥에게 꽉 잡혀 살고 주변에서 공처가라고 놀려도 인정하면서 기분 나빠하지 않습니다. 헌신적인 아내의 사랑을 잘 알고, 아내를 생명의 은인으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네요.
당시 김보옥은 탤런트로 데뷔하여 활동을 하려던 때였으나, 남자친구 이덕화의 사고로 꿈을 접고 오롯이 이덕화의 병간호에만 전념하게 됩니다. 후에 이덕화의 3년 병수발이 끝난 1980년에는 무용가로 전향하면서, 이후 남편 이덕화의 내조에만 집중하구요.
결국 3년후 병상에서 일어난 이덕화는 아내 김보옥과 동거를 하게 됩니다. 그 흔한 프로포즈도 없었고 결혼식도 올리지 않은 상태였지만 김보옥은 만족했던 거 같습니다.
이덕화 김보옥 두 사람의 결혼식은 첫 아이가 2살이 됐을때나 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덕화의 오토바이 교통사고는 또 하나의 시련을 그에게 안겨줍니다.
바로 이덕화 아버지 원로배우 이예춘의 사망.
지병인 고혈압과 당뇨를 앓던 이예춘은 아들 이덕화의 교통사고 소식에 병세가 급악화되어 입원하게 되는데요. 아들 이덕화가 사고로 입원했던 병실의 바로 옆 병실에 입원해 있다가 세상을 떠납니다.
이덕화 아버지 이예춘은 자신도 병으로 입원한 상태에서 이덕화가 오토바이 사고로 크게 다쳐 병원에 입원해오자 아들의 병 간호며, 사고 수습을 위해 동분서주 했다고 합니다.
1년정도 지나 아들이 병세가 호전되는 기미를 보이자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진 이예춘은, 아들 이덕화가 잘 걷지도 못하는 몸으로 아버지를 중환자실로 보내기위해 겨우 엘리베이터로 아버지를 옮겼는데. 그 엘리베이터에서 숨을 거두게 됩니다. 1977년 향년 58세.
이덕화 - "병원에서 나도 잘 걷지 못하는 상태로 위독한 아버지를 모시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 짧았던 시간이 너무도 길게 느껴졌다. 아버지를 못 모신게 너무 죄송하고 난 정말 불효자다.."
아버지에게 하고싶은 말은? 이덕화 - "아버지, 아이들 잘 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