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영화계가 가장 크게 번영했던 영화의 중흥기인 60년대는 문희, 윤정희, 남정임 이라는 세명의 트로이카미녀들이 활동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던 시대이지요. 세상사람들은 그녀들은 ‘60년대의 트로이카’ 또는 ‘1세대 트로이카’라고 부른답니다. 60년대 중반, 좀 더 신선하고 세련된 미모를 갖춘 세명의 미녀여배우들이 출현해서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환호를 받았는데,
이 시기는 우리나라 영화산업이 가장 크게 번성했던 우리 영화의 황금기였는데, 이 시대에는 대단히 연기 잘하고 뛰어났던 배우들이 많이 활동했답니다.
1세대 트로이카 중에서도 가장 청순한 미모와 세련미, 그리고 신선감을 안겨주었던 미녀가 바로 남정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녀는 청순한 미모로 그 시대의 남성들의 마음을 온통 사라잡았던 60년대의 대표적인 미녀아이콘이었답니다.
남정임은 애정물 뿐만아니라, 사회물과 범죄물, 액션물, 사극 심지어는 검술영화, 무협영화 등 매우 다양한 영역에서 연기활동을 펼쳤던 연기영역의 폭이 매우 넓었던 팔색조 같은 여배우로서 큰 인기를 끌었답니다.
문희와 윤정희는 보편적인 미인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남정임은 두 미녀여배우와는 색다른 신선함과 세련미, 그리고 독특한 개성미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남정임은 트로이카 3인방 중에서 가장 청순한 미녀로 볼 수 있는데, 특히 젊은층들의 큰 사랑을 받아왔던 여배우입니다.
남정임은 1966년도에 영화 ‘유정’으로 데뷔했고, 그녀는 첫데뷔작에서 주인공을 맡았을 정도로 그녀의 대단한 미모가 인정을 받았습니다.
남정임은 멜로영화나 청춘영화에도 많이 출연했지만, 특히 그 시대에서는 실험작이라고 할 수 있는 검객무협영화와 형사액션영화에도 많이 출연했다는 점이 특징인데,
이렇게 남정임은 다양한 장르의 연기활동을 펼침으로써, 특히 남성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개성있는 캐릭터가 강한 남정임이 열연함으로써, 작품의 완성도를 한층 더욱 높일 수 있었답니다.
남정임은 이러한 검객무협영화에서 세련된 미모와 신비로운 검술을 선보이는 여전사로 출연해 열연을 펼침으로써, 그 당시 젊은 남성들로부터 큰 환호와 갈채를 받았던 겁니다.
이 점에서 60~70년대에 멜로연기 뿐만아니라, 액션연기도 함께 완벽하게 연기했던 여배우 남정임을 당대 최고의 스타로 꼽을 수 있고,
그런점에서 남정임은 다른 여배우들과는 차별화되는 가장 개성이 강한 여배우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남정임은 미모만 출중한 것이 아니라, 연기력도 대단히 우수했던 정말 아까운 여배우였다고 느껴지는데, 그녀가 데뷔한 66년부터 그녀가 은퇴한 71년도까지의 6년 동안이 그녀의 최고의 전성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남정임이 이렇게 영화에서는 큰 인기와 명성을 떨쳤지만, 그녀의 사생활만큼은 별로 행복하지 않았던 걸로 알려지고 있어서, 그것이 미스테리입니다.
남정임은 한창 인기가 절정이었던 1971년도에 돌연 3살 연상의 재일교포 임방광과 결혼을 하면서, 영화계에서 은퇴를 하게 됩니다.
당시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끌고있었던 남정임은 성공한 재일교포 출신의 사업가 임방광과 세종호텔에서 화려한 결혼식을 올려서 큰 화제가 되었는데, 1,000명이 넘는 대중들이 참석해서 그녀의 결혼을 축하해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화려한 결혼식을 올린 그녀의 결혼생활은 결코 오래 가지않았고, 3년 만에 파경을 맞게됩니다.
남편과 파경을 맞은 이유는 뻔할 뻔자로, 그녀의 남편의 사업부진 때문에 서로간에 심한 갈등이 생겼기 때문이고, 일본에서의 결혼생활에 환멸을 느낀 남정임은 3년만에 일본에서 한국으로 귀국하게 됩니다.
그녀가 이혼한 구체적인 사연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재일교포와 결혼함으로써, 일본의 시댁집으로 들어가 살았던 남정임은 일본에서의 낮설은 시집살이가 매우 불편했고, 행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특히 일본에서 남정임은 남편의 시댁집에서 운영하는 도쿄에 있는 한식당(불고기집)에 자주 동원되어서 홀서빙일까지 했었다고 하니, 화려한 결혼식과는 달리 그녀의 실제 결혼생활이 얼마나 고달팠는지 이해가 가고도 남는 부분입니다.
왕년에 한국을 대표하는 톱 미녀스타가 일본식당에서 홀서빙을 하다니!!!
특히 그녀의 시부모님은 남정임을 식당으로 불러내어 서빙일에 시키면서 그녀를 마구잡이로 부려먹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고된 시집살이와 남편의 무책임한 행동, 사업부진 등이 부부간의 갈등을 증폭시켰고, 결국 남정임은 남편, 시집과의 불화를 극복하지 못하고, 3년만에 남편과 결별하고 한국으로 귀국합니다.
누구보다도 화려한 결혼식을 올렸지만, 허망하게 이혼하고 돌아온 남정임은 1976년도에 영화 ‘나는 고백한다’로 다시 한국영화계에 복귀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후 남정임은 주로 안방TV 드라마에서 출연해 연기활동을 펼쳤습니다.
그렇지만 그 당시 우리사회는 지금과는 달리 보수적인 관념이 강했던 때라, 결혼실패해 돌아온 남정임에 대한 반응은 무척 싸늘했습니다.
60년대 중반부터 71년도까지 그녀가 출연한 영화들은 모두 흥행에 큰 성공을 거뒀을 정도로 흥행의 보증수표라고 불렸던 남정임이었지만,
이혼하고 복귀한 후, 그녀가 출연한 영화와 드라마들은 모두 흥행에 실패했고, 그녀는 과거와는 전혀 달라진 영화판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큰 실의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남정임은 77년도에 드라마 ‘여고동창생’에 출연해 연기활동을 해나갔는데, 그런데 이 드라마에 출연할 시기에 갑자기 뜻밖의 폭행사건이 터져버린 겁니다.
1977년 1월27일, 남정임은 누군가로부터 칼에 머리가 찔리고 얼굴과 몸에 심한 타박상을 입었던 사건입니다.
경찰이 출동해서 조사가 이뤄졌는데, 경찰조사에서 남정임은 오빠에게 얻어맞아서 상처가 생겼다고 진술을 했지만, 그녀가 입은 상처가 너무 심했고,
그녀의 가족들마다 서로 다른 진술을 하는 점을 이상하게 생각한 경찰은 매우 심도놓은 수사를 벌였습니다.
경찰의 정밀한 수사 끝에, 오빠에게 맞았다는 남정임의 진술은 거짓임이 드러났고, 그녀는 오빠가 아닌 그녀의 애인이자 동거인이었던 노승주에게 얻어맞았다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났습니다.
놀랍게도, 남정임은 자신의 집에서 학원이사장 출신인 애인 노승주와 동거를 해왔는데, 밤에 늦게 귀가하고 거짓말을 한다는 이유로 애인 노증주로부터 심한 폭행을 당했던 겁니다.
그런데 이같은 사실이 대중들에게 알려지면, 남정임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고, 연기활동에 큰 지장이 초래되기 때문에, 남정임은 이같은 사실을 숨기고 거짓말을 했던 것입니다.
결국 거짓증언을 한 남정임과 오빠는 공무집행방해죄가 적용되어, 경찰에 입건되어 형사재판까지 받는 처지가 됩니다.
이같은 남정임의 폭행스캔들이 언론에 보도되고 세상이 널리 알려지면서, 남정임은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게됩니다.
이 폭행스캔들이 터진 당시만 해도 남정임은 일본에 있는 남편과 정식으로 이혼하지 않고, 별거만 해온 상태였습니다.
아직 이혼도 하지않은 여인이 외갓남자와 동거를 하고, 폭행에다 거짓말까지 한 사실이 들통이 나자, 그녀는 대중으로부터 심한 도덕적인 비난을 받았던 겁니다.
이같은 상황에 부닥치자, 그녀는 약을 먹고 자살까지 시도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방송국으로부터 출연정지를 당하고 맙니다.
그런데 남정임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폭행사건의 주범인 애인 노승주와 1978년도에 재혼을 함으로써, 또한번 세상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답니다.
노승주와 결혼한 후 남정임은 연예계에서 은퇴하였고, 남편과의 사이에 1남 1녀를 낳아 기르면서 안정된 삶을 살아가게 되었고, 그 당시 남편 노승주는 대한도시가스 대표이사를 맞는 등 성공가도를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남정임은 그렇게 안정적인 삶을 살아갔지만, 운명의 신은 그녀의 편이 아니었나 봅니다. 한번의 결혼실패 후, 다시 재혼해서 평온한 삶을 살아갔던 남정임은 1989년도에 갑자기 유방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유방암에 걸린 그녀는 3년동안 병마와 치열하게 싸우면서 재기에 몸무림쳤지만, 그녀는 결국 암을 극복하지 못한채, 1992년도 사망하고 말았답니다.
암과 투병하는 와중에서도 남정임은 자신의 일생 일대기를 담은 영화를 찍기를 원했다고 알려졌는데, 그녀는 아쉽게도 남편과 두자녀를 남겨놓고는 48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과 이별하고 말았지요.
남정임은 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 출중한 미모와 개성있는 연기력으로 당대의 톱클라스의 여배우로 큰 명성을 떨쳤던 전설적인 여배우입니다.
그녀의 연기활동 기간은 비록 짧았지만, 그녀는 300편이 넘는 당대의 뛰어난 명작들을 남겨놓았고, 60, 70년대에 가장 대중적인 인기여배우로 많은 대중들의 가슴속에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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