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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선 복잡한 삶의! 삶은 피폐해 질대로! 난 돈 만 필요 해. "더 이상 노래 부를 힘이 없다." 슬픈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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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n1989 2021. 7. 24.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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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영원한 '섹시 아이콘' 김완선 컴백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92년 은퇴 이 후, 여러 장의 앨범을 발매했지만 이번만큼은 분위기가 다르다.

 

에서 그녀가 자신의 인생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털어 놓은 뒤, 그녀에 대한 대중 호응도가 대단히 높아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릎팍 도사]에서조차 김완선이 말하지 못한 부분이 하나 있다.

 

바로 2003년 연예가를 뜨겁게 달궜던 '김완선 누드사건'에 관한 이야기다.

86년 데뷔 이래, 김완선은 누가 뭐래도 가요계의 최고 '핫 아이콘'이었다. 

 

[무릎팍 도사]에서 강호동이 한 말처럼, 그 당시 김완선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만큼 화려한 사람이었다. 정말 그녀는 그랬다. 적어도 무대 위에서 만큼은.

 

그러나 무대 위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가수' 김완선이 아닌 '인간' 김완선은 그 누구보다 쓸쓸하고 고독한 사람이었다.

 이모이자 매니저인 한백희의 철저한 사생활 통제 때문에 무대 위 노래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녀에게 '평범한' 모든 것들은 철저히 부정당했다.

 

 "평범한 삶이 사무치도록 그리웠다."던 김완선의 말 한마디는 당대 가장 화려한 스타였던 그녀가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숙명이자 고통을 대변한다.

 

하지만 이것보다 그녀를 더 괴롭힌 것은 바로 '돈' 문제였다. 이모 한백희와 결정적인 결별의 이유가 된 이 금전적 문제는 두고두고 김완선을 괴롭히며 그녀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86년 데뷔해 98년 결별할 때까지, 약 13년여의 시간 동안 김완선은 한백희에게 단 한푼의 금전적 보상을 받지 못했다. 

김완선이 번 돈은 모두 한백희의 남편 즉, 이모부의 사업자금으로 끊임없이 들어갔고 끊임없이 사라졌다. 말 그대로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셈이었다.

 

98년 한백희와 결별하면서 가진 한 여성잡지 인터뷰에서 김완선은 "이모에게 조금의 돈도 받지 못하면서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이모와 헤어지는 이유 중 가장 큰 문제는 돈 문제다." 라며 솔직하게 털어 놓은 바 있다. 그러나 이모와 결별한 것으로 김완선의 불행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한백희는 김완선의 이름으로 여러 군데서 대출을 받아 큰 빚을 지었을 뿐 아니라, 남편의 사업자금을 위해 여러차례 보증을 선 상태였다. 김완선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한백희와 결별한 뒤 김완선은 오히려 더 큰 '경제적 빈곤'에 시달려야 했다. 98년 결별 후 약 1~2년간의 활동 공백기를 거치면서 삶은 피폐해 질대로 피폐해졌고, 이모가 진 빚은 눈덩이처럼 계속 불어났다.

 

2000년대 들어 행사, 축제 등 닥치는대로 일을 하며 빚을 갚고 저축을 했던 김완선이었지만 이모가 떠안겨 놓은 경제적 문제는 쉽사리 해결되지 않았다. 

무대 위에서는 언제나 밝에 웃으며 춤을 췄던 그녀지만 무대를 내려오는 순간 닥쳐오는 현실적 문제는 그녀를 끊임없이 괴롭게 했다. 

 

여기에 엎친데 덮친격으로 '애증의 대상'인 한백희가 지긋지긋한 투병생활을 시작하면서 김완선은 이모의 빚 뿐 아니라 병원비까지 대야하는 이중고에 시달려야만 했다.

 

이 때, 김완선에게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제안 하나가 들어온다. 바로 '누드화보 촬영'이 그것이었다. 2003년 당시 대한민국 연예계는 연예인 누드화보 공개로 들썩이고 있는 상태였다. 

이혜영, 함소원, 권민중 등이 누드 화보 대열에 합류해 천문학적 수익을 올렸다는 소식이 매일 신문 1면을 장식할 정도로 '연예인 누드'는 대단한 이슈거리였다. 어떻게든 돌파구를 마련해야만 하는 김완선에게 이 누드화보는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결국 김완선은 소속사와 상의도 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누드 화보 촬영을 강행한다. 당시 그녀는 소속사와 앨범 발매 등의 문제로 인해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었다. 소속사와의 관계를 정리하며 천천히 일을 진행하기엔 스타로서도, 가수로서도,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도 김완선은 사면초가의 지경에 빠진 상태였다.

그녀는 "현 소속사에서 음반 발매 약속을 지켜주지 않고 있기 때문에 계약 파기 조건이 된다. 만일 조용히 해결 되지 않으면 위약금을 물어 주고라도 소속사를 나오겠다"며 누드 화보 촬영을 끝까지 밀어부쳤다. 

 

주위의 걱정과 지인들의 만류가 있었지만 김완선의 의지는 확고했다. 말 그대로 좌우 아무것도 살피지 않는 '정면돌파'만이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누드 화보 촬영으로 5억을 지급받고 수익에 따라 인센티브를 배분받는 조건으로 누드 화보를 촬영했다. 

 

한 명의 여성으로서 쉽지 않은 선택이었겠지만 발 등의 불 부터 꺼야했다.

 

 그녀는 훗날 당시 누드화보 촬영에 대해 "아무것도 필요 없었고, 단 한가지 돈이 가장 필요했다. 경제적 빈곤이 너무 심해 어떻게든 해결을 봐야했다. 그 땐 보이는게 그것 밖엔 없었다."고 힘겹게 토로했다. 그녀가 얼마나 많은 고민끝에 선택한 결정이었는지 절절히 느껴지는 대목이다.

 

허나 김완선의 독단적인 누드 화보 촬영을 가만히 두고 볼 소속사가 아니었다. 김완선의 소속사는 즉각적으로 "김완선이 회사와 상의 없이 일을 독단적으로 처리했다."며 김완선의 누드 화보 및 동영상에 대해 '누드서비스 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출했다. 

이와 함께 전속 계약을 어겼다는 이유로 3억 2000만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함께 진행했다. 2003년 하반기 연예계를 뜨겁게 달군 이른바 '김완선 누드사건'의 시작이었다.

 

이 뿐만 아니라 소속사는 "김완선이 괘씸하다"며 그녀가 살고 있는 집과 저축 통장에 대해서도 가압류 신청을 냈다. 

경제적 돌파구를 찾아보고자 시작했던 누드 화보 촬영 때문에 오히려 '빈털털이'로 전락할 위기까지 몰린 것이다. 그러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누드 화보 촬영을 진행했던 오조샵은 "누드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김완선이 소속사와 마찰을 일으켜 수익이 제대로 나지 않았고, 초상권 확보가 힘들다."며 차일피일 계약금 지급을 미루고 있었고 결국 김완선은 오조샵을 상대로 계약금 지불 소송을 걸 수 밖에 없었다. 5억을 받기로 한 계약금 중 반도 안 되는 2억 밖에 받지 못한 김완선에게 연이은 법정 다툼은 엄청난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2004년 1월 6일자 일간스포츠에 따르면 당시 그녀는 주변 지인들에게 "약속된 돈도 못 받았고 통장에 압류까지 걸려 살 수가 없다. 변호사 비용도 감당하기 힘들다. 너무 괴롭다."며 고통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고 춤과 노래에만 바친 20년 인생. 그러나 그 순수했던 '소녀'에게 남은 것은 추락한 인기와 수습하기도 힘든 경제난, 그리고 무성한 소문과 치열한 법정다툼 뿐이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섹시 아이콘의 운명치곤 너무나 비참한 상황이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치닫는 순간에도 김완선은 무대에 올라 춤과 노래를 해야만 했다. 지리한 법정다툼이 끝없이 이어진데다가 이모의 빚과 병원비까지 감당해 내야 했기 때문이다. [무릎팍 도사]에서 말한 것처럼 "자다가도 억울해서 벌떡벌떡 일어날 지경" 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살기 위해 노래하는 것이 김완선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생존방식이었다.

결국 이 복잡하고 치열했던 누드사건은 김완선이 오조샵에게 건 소송이 승소하고, 소속사와 결별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허나 이 사건으로 인해 김완선에게 남은 것은 치유할 수 없는 상처뿐이었다. 

 

돈 때문에 누드까지 찍어야 했던 영원한 섹시 아이콘 김완선의 '슬픈 진실'은 연예가 사람들의 많은 안타까움을 샀다. "그래도 왕년의 스타였고, 음악적으로도 대단했는데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나" 라는게 연예계 전반의 중론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누드파문 뒤로도 김완선의 인생이 순탄치 않았다는 사실이다. 2005년 가까스로 마음을 수습하고 낸 9집은 아쉽게도 큰 재미를 보지 못했고 동대문 두타에 차린 의류사업도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참다참다 못한 김완선이 병실에 있는 한백희를 찾아가 "왜 그 때 나한테 돈을 주지 않았냐! 돈을 조금이라도 줬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 아니냐!"고 울며 항변했던 것도 이 때 쯤이었다. 조카의 모진 말에 못난 이모는 그저 "미안하다. 완선아, 미안해." 라는 말만 되뇌인 걸로 전해진다. 이것이 김완선과 한백희가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2006년, 한백희가 당뇨병으로 타계하자 김완선은 큰 충격을 받았다. 김완선에게 이모 한백희는 애증의 대상이었다. 그녀에게 이모는 가수로서 자신을 스타로 성장시켜 준 최고의 매니저였지만, 금전적 문제로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힌 원수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또한 이모와 함께 이뤄냈던 수많은 영광의 나날은 이모에 대한 증오와 원망으로 얼룩진 고통의 시간이기도 했다. 무조건 사랑할수도, 무조건 미워할수도 없는 그런 관계. 그게 바로 김완선과 한백희의 복잡미묘한 관계였다.

 

이모의 죽음과 함께 "더 이상 노래 부를 힘이 없다."며 돌연 하와이 행을 선택했던 그녀는 만 6년만에 다시 대중 앞으로 돌아와 새로운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하와이의 시원한 바람과 대자연의 풍광 속에서 세상에 대한 서운함, 이모에 대한 원망을 모두 날려버렸다던는 그녀는 예전보다 훨씬 단단하고 올곧은 모습으로 진정한 '제 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한 길만을 바라보고 쉼 없이 달려온 인생. 그 과정 속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엄청난 댓가를 치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전히 무대 위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진정한 가수로 남아있다. 그래서일까. 한 인터뷰에서 지난 누드 사건에 대해 묻는 기자에게 김완선은 이런 말을 한다.

 

"그 사건은 여전히 아프다. 사실 그걸 찍은 것도 끝까지 춤추고 노래하고 싶어서였다. 어떻게든 무대 위에서 살아 남기 위한 몸부림이랄까. 어쨌든 일일이 얘기하기 힘든 만큼 아팠던 지난 세월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지금이다. 과거의 아픈 것들은 다 잊어버리고 그냥 가수 김완선으로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싶다. 그 날을 꿈꾸며 노래하고 춤춘다. 그게 내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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